아사벼리(전3권)
이지환(자작나무) / 로맨스 / 역사/시대물
★★★★☆ 8
“이 무례한 놈!”
방심하다 단단히 허를 찔린 셈이었다. 천지분간 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휘둘러대는 취한 자의 검인지라, 어디로 튈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거의 땅에 닿다시피 몸을 낮추어 다시 달려드는 검날을 피했다. 그러면서 허리춤의 검을 빼들어 눈앞으로 달려드는 검을 막았다. 빠각각, 소리를 내며 두 개의 검이 강하게 맞부딪쳤다. 타다닥, 불꽃이 튕겼다.
처음에는 단순히 건방진 자의 버릇을 고쳐 줄 작정이었다. 한데 어느새 이것은 정식으로 검을 든 대적이 되어 버렸다.
강하게 내려치는 벼리의 검을 잘도 막아내며 단뫼의 사내가 킬킬댔다. 게슴츠레한 눈을 들어 벼리의 가슴께를 징글맞게 훑었다. 옷고름이 잘려져, 저고리 자락이 펄럭였다. 싫든 좋든 봉긋한 가슴골을 단단히 싼 하얀 천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오호, 너! 수컷인 줄 알았더니 암컷이 아니냐?”
“이, 이 천박한 놈!”
귀에서 하얀 연기가 날 정도로 분개했다. 그러나 사내는 나불나불 잘도 약을 올리고 있었다.
“큭큭, 암컷더러 암컷이라 하는데 무엇 잘못되었느냐? 허면 남장 계집이라 불러 주랴?”
잘도 막아낸다. 잘도 나불댄다. 검을 휘두르는 솜씨 못지않게 입도 기름칠한 듯 어찌 그리 미끄러운지,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 말마다 아주 사람의 염장을 뒤집었다. 어느새 술 취한 기색은 사라지고, 눈빛이 더 짙어진 그가 다시 벼리의 약을 올렸다.
“정곡성은 이상하군. 암컷이 싸울아비 복장에다 검을 휘두르니 이것, 못쓰겠다. 이곳에는 사내가 그리 없더냐?”
“이, 이 후레자식 같은 놈! 그 더러운 입을 닥치지 못하겠느냐?”
“하하하, 내가 후레자식인 건 어찌 알았느냐?”
“뭐, 뭐라고?”
“내 어미가 아비를 알지 못하는 여럿 자식을 낳았는데, 우리나라 풍습이야 당연한 일. 그중 하나가 바로 나란다. 다른 욕을 찾거라. 후레자식이라서 오히려 자랑스러운 나다.”
격장지계. 마음을 동요시켜 손을 무디게 하려 하였는데, 먹혀들지 않았다. 벼리는 이를 앙다물고 험상궂게 그를 쏘아보았다. 기름질 칠한 저 입을 찢어 놓고 싶었다.
“왜 나를 보니 마음이 동하느냐? 검날 말고 다른 데를 대어 보려느냐?”
다시 사내가 킬킬거리며 조롱했다. 벼리는 이를 악물고 두 손으로 검을 움켜잡았다. 죽여 버릴 테다, 이놈! 기를 담아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사내의 목줄을 댕강 끊어 버릴 듯이 강하게 후려쳤다.
(1권에서 남긴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