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전에 대답 못 들었는데……, 전에 이야기 하려고 했던 거 마저 말해주면 안 돼요?”
“전에 말 하려던거?”
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깨난 듯 되물었다.
“저기…… 절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요. 우리 약국에 온 게 일부러 온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거 왜 인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수연은 자못 심각했다. 이 남자가 왜, 뭐가 부족해서 자신에게 먼저 접근할 이유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일생을 살고 있었을 지라도 그것이 내내 맘에 걸리긴 했었다.
“아…… 그거! 내가 관심 있어서. 전에 내가 길가다가 우연히 봤었는데 당신이라고 느꼈거든. 분명히…… 이번에 나를 죽이러올 서린이 바로 당신이라고.\"
\"뭐요?“
......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기나긴 갈증에 시달린 이 처럼 - 실제로는 거의 물속에 있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 그녀의 입술을 물려고 했다. 따뜻하고, 부럽고, 달기까지 한 그녀의 입술…….
“진욱 씨. 괜찮아요?”
그녀가 살짝 얼굴을 떼고 물러서면서 자그마한 소리로 물었다.
괜찮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괜찮아졌다. 수연의 나지막하고, 작고, 부드럽고 그리고 걱정스러움까지 묻은 한 마디는 그의 지친 몸을 보듬고 치료하고 재생하는 것만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 버리고 간 전출 증명서에 쓰여 있던 이름이었다. 몇 번인지 모를 만큼 많이도 바꾸었던, 그저 별 특징이 없고 슬쩍 나타나도, 슬쩍 사라져도 별 관계없다는 공통점을 가진 그를 부르는 명칭들. 그러나 이 여자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이름은 왠지 달착지근한 향기 까지 품은 것 같아서 내심 마음에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게 내 마지막 이름이구나. 그는 그녀가 불러주는 이 마지막 이름을 갖게 된 것 조차 기뻤다.
“괜찮아. 모든 게…….”
모든 게 괜찮았다. 그의 한쪽 팔이 욱신거리는 것도, 과도하게 빠져나간 기운 같은 것도, 혹은 일을 처리할 수하가 없어진 것도, 그로 인해 상대방이 의기양양해 있을 것 까지도.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나긋나긋 하고 따뜻한 여자의 몸이 순순히 안겨 왔다. 그리고 명치끝이 뻐근하도록 가는 팔을 내밀어 자신의 허리를 감는 짜릿한 경험까지 하게 되자 그를 다 잡고 있던 이성이란 놈의 끈은 투둑 소리를 내면서 끊어지고 말았다. 꼭 미르가 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삼칠 전의 그 숲에서 날아오던 명영시가 아니더라도 그에게 이제 더 이상 불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기 전에, 그러기 전에 이 의미 없이 살았던 삶 대신 다른 며칠을 살고 싶다…….
‘사랑해. 내가 떠날 때까지만, 내 곁에 있어줘……’
하지 말았어야 했었다. 분명히 입은 꾹 다물고 있었었다. 그러나 머리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이 감정의 격류를, 이 작고 가녀린 몸을 가진 여자에 대한 마음을 쏟아 붓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흘러내리는 생각의 조각들을 이제는 거둬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아무리 휘저어 보아도 입술로만으로는 이 갈증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의 입술은 매끄러운 그녀의 턱선을 타고 내려갔고 쇄골을 물어 갔으며 꼭 여며진 보드라운 샤워가운의 매듭을 풀고 있었다.
‘사랑해……. 사랑해.’
어느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는 단어, 그러나 그가 살아온 아주 오래전에도 늘 있던 말, 말의 모양새는 바꿨을지 몰라도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뜻은 이리 간절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쇄골에 화인을 찍어 내고 있었다. 분명히 그의 타는 듯 한 뜨거운 입술은 아무런 말도 없었으나 자신의 머릿속에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너무나 간절했다. 신 앞에 머리를 조아린 독실한 수도자의 탄식 같은 목소리는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
무미건조하게 하루 종일 갑갑한 약국에서 처방전을 입력하고 계산을 하는 것으로 일상을 보내는 십자약국의 직원 위수연.
취미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는, 고리타분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녀의 무료한 일상에 나타난 남자.
유난히 비가 오는 날이 많은 늦봄,
금요일 9시 16분 이면 똑같은 처방전을 들고 오는 남자.
그 남자의 처방전에 쓰여진 것은 일주일 치의 수면제.
“저기… 절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요. 우리 약국에 온 게 일부러 온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거 왜 인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아… 그거! 내가 관심 있어서. 전에 내가 길가다가 우연히 봤었는데 당신이라고 느꼈거든. 분명히… 이번에 나를 죽이러올 서린이 바로 당신이라고.”
작가소개
- 焉哉乎也(안상미)
간절한 사랑을
쓰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조금 삐둘어진
황소자리 여인네.
출간작
애인-그를 사랑하다. 오만과 건어물. 마장동 칼잽이와 불편한 진실. K&J. 달콤하지 않아도 괜찮아(공저). 배송 준비중. 4월이 내게 말했다. 그때 거기 당신이 있었다.
이북 : Pride & prejudice. 타나토스. The drummer. 각인하다. Love of The loveless.
“저기요. 전에 대답 못 들었는데……, 전에 이야기 하려고 했던 거 마저 말해주면 안 돼요?”
“전에 말 하려던거?”
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깨난 듯 되물었다.
“저기…… 절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요. 우리 약국에 온 게 일부러 온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거 왜 인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수연은 자못 심각했다. 이 남자가 왜, 뭐가 부족해서 자신에게 먼저 접근할 이유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일생을 살고 있었을 지라도 그것이 내내 맘에 걸리긴 했었다.
“아…… 그거! 내가 관심 있어서. 전에 내가 길가다가 우연히 봤었는데 당신이라고 느꼈거든. 분명히…… 이번에 나를 죽이러올 서린이 바로 당신이라고.\"
\"뭐요?“
......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기나긴 갈증에 시달린 이 처럼 - 실제로는 거의 물속에 있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 그녀의 입술을 물려고 했다. 따뜻하고, 부럽고, 달기까지 한 그녀의 입술…….
“진욱 씨. 괜찮아요?”
그녀가 살짝 얼굴을 떼고 물러서면서 자그마한 소리로 물었다.
괜찮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괜찮아졌다. 수연의 나지막하고, 작고, 부드럽고 그리고 걱정스러움까지 묻은 한 마디는 그의 지친 몸을 보듬고 치료하고 재생하는 것만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 버리고 간 전출 증명서에 쓰여 있던 이름이었다. 몇 번인지 모를 만큼 많이도 바꾸었던, 그저 별 특징이 없고 슬쩍 나타나도, 슬쩍 사라져도 별 관계없다는 공통점을 가진 그를 부르는 명칭들. 그러나 이 여자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이름은 왠지 달착지근한 향기 까지 품은 것 같아서 내심 마음에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게 내 마지막 이름이구나. 그는 그녀가 불러주는 이 마지막 이름을 갖게 된 것 조차 기뻤다.
“괜찮아. 모든 게…….”
모든 게 괜찮았다. 그의 한쪽 팔이 욱신거리는 것도, 과도하게 빠져나간 기운 같은 것도, 혹은 일을 처리할 수하가 없어진 것도, 그로 인해 상대방이 의기양양해 있을 것 까지도.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나긋나긋 하고 따뜻한 여자의 몸이 순순히 안겨 왔다. 그리고 명치끝이 뻐근하도록 가는 팔을 내밀어 자신의 허리를 감는 짜릿한 경험까지 하게 되자 그를 다 잡고 있던 이성이란 놈의 끈은 투둑 소리를 내면서 끊어지고 말았다. 꼭 미르가 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삼칠 전의 그 숲에서 날아오던 명영시가 아니더라도 그에게 이제 더 이상 불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기 전에, 그러기 전에 이 의미 없이 살았던 삶 대신 다른 며칠을 살고 싶다…….
‘사랑해. 내가 떠날 때까지만, 내 곁에 있어줘……’
하지 말았어야 했었다. 분명히 입은 꾹 다물고 있었었다. 그러나 머리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이 감정의 격류를, 이 작고 가녀린 몸을 가진 여자에 대한 마음을 쏟아 붓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흘러내리는 생각의 조각들을 이제는 거둬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었다.
아무리 휘저어 보아도 입술로만으로는 이 갈증을 채울 수가 없었다. 그의 입술은 매끄러운 그녀의 턱선을 타고 내려갔고 쇄골을 물어 갔으며 꼭 여며진 보드라운 샤워가운의 매듭을 풀고 있었다.
‘사랑해……. 사랑해.’
어느 누가 만든 말인지는 모르는 단어, 그러나 그가 살아온 아주 오래전에도 늘 있던 말, 말의 모양새는 바꿨을지 몰라도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뜻은 이리 간절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쇄골에 화인을 찍어 내고 있었다. 분명히 그의 타는 듯 한 뜨거운 입술은 아무런 말도 없었으나 자신의 머릿속에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너무나 간절했다. 신 앞에 머리를 조아린 독실한 수도자의 탄식 같은 목소리는 끊임없이 외치고 있었다. 사랑한다고…….
--------------------
무미건조하게 하루 종일 갑갑한 약국에서 처방전을 입력하고 계산을 하는 것으로 일상을 보내는 십자약국의 직원 위수연.
취미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는, 고리타분하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녀의 무료한 일상에 나타난 남자.
유난히 비가 오는 날이 많은 늦봄,
금요일 9시 16분 이면 똑같은 처방전을 들고 오는 남자.
그 남자의 처방전에 쓰여진 것은 일주일 치의 수면제.
“저기… 절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요. 우리 약국에 온 게 일부러 온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거 왜 인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아… 그거! 내가 관심 있어서. 전에 내가 길가다가 우연히 봤었는데 당신이라고 느꼈거든. 분명히… 이번에 나를 죽이러올 서린이 바로 당신이라고.”
작가소개
- 焉哉乎也(안상미)
간절한 사랑을
쓰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조금 삐둘어진
황소자리 여인네.
출간작
애인-그를 사랑하다. 오만과 건어물. 마장동 칼잽이와 불편한 진실. K&J. 달콤하지 않아도 괜찮아(공저). 배송 준비중. 4월이 내게 말했다. 그때 거기 당신이 있었다.
이북 : Pride & prejudice. 타나토스. The drummer. 각인하다. Love of The love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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