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날 사랑하지 말아요.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아.

학당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녀 예린과, 아버지의 강압 때문에 피아노를 떠나 군인이 되어야 했던 남자 알렉산드르. 1936년 잔인한 제국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두 남녀가 서로의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한곳에 선다. 그날 이후, 예린은 모든 것을 각오한 채 그와 함께하고자 다가서지만 어째서인지 알렉산드르는 그녀를 받아들이지도, 거부하지도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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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당신에게 난 뭔가요? 좀 전에 흥분해서 막말을 했지만 그런……, 그런…… 더러운 의도로 날 도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 나를 위해 그런 어려운 일을 했죠? 당신의 진심을 알고 싶어요. 제발 솔직하게 말해 줘요］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예린을 응시하던 그는 천천히 등을 돌리며 창가에 섰다.

［예린. 당신은 아직 어려요. 지금 낯선 곳에서 외롭고 또 음악이 주는 마법 때문에 날 사랑한다는 착각을 하고 있지만 정말 당신에게 맞는 사람을 만나면……］

이게 진심일 리가 없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 줬던 관심과 애정이 혼자만의 착각이라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아뇨! 내 운명이 피아노라는 걸 확신하는 이상으로 내 감정은 확실해요. 당신이 아직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건 이해해요. 하지만 내게 아무런 감정도, 관심도 없다고 말할 수 있나요?］

예린의 확고한 반박은 그를 당황하게 한 것 같았다. 마치 신기한 것이라도 보는 것처럼 자신의 긴 손가락을 응시하던 알렉산드르는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예린. 난 사랑해서도 안 되고 사랑할 수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예요?］

예린의 반발을 알렉산드르는 담담한 어조로 잘랐다.

［우리는 이뤄질 수 없어요］


* 이 전자책은 2007년 타 출판사에서 출간된 〈광시곡〉을 eBook으로 제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