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당치 않습니다. 조용히 살다 가는 것이 제 유일한 소망입니다.
역적의 딸.
바로 어제까지 칭송받던 고려의 대신이자 학자의 딸인 채연에게 새로이 붙은 낙인이었다.
동생들을 위해 부엌일을 하는 천한 공녀로 자원해서 명나라로 떠나는데…….
황도로 들어가기 전날 밤, 자결하려는 무사를 발견하고 말리면서 이름 없는 궁녀로 살다 스러지려는 그녀의 소망은 끝이 난다.
그리고 황궁에서 환관인 줄 알고 황태손과 친구가 되면서 평범한 조선 공녀는 황위 계승이라는 소용돌이의 중심이 되는데…….
▶ 잠깐 맛보기
“어디 출신이냐?”
“무슨 말씀이신지요?”
“네 말투는 아국(我國)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목숨을 건졌지. 아니었다면 난 지금 네 시신을 벗삼아 한잔하고 있었을 것이다.”
“동쪽에 있는 고려의 개경 출신입니다.”
이성계의 나라 이름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아 아직도 그녀에게 익숙한 지명을 댔다.
“고려?”
잠시 고개를 갸웃하는 것 같던 사내의 반문이 어둠 속에서 날아왔다.
“동국(東國) 조선을 말하는 것이냐? 몇 해 전 이씨 성을 가진 장수가 왕씨를 몰아내고 고려 땅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새로 열지 않았던가?”
인정하기 싫지만 고려가 사라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새록새록 억울한 기억들과 서글픔에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려 애쓰는데 그가 재차 물었다.
“그런데 여인이 어째서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거냐?”
“공녀로 선발되었습니다.”
“공녀라……. 이씨 왕가에 원한이 깊은 모양이구나. 왕조가 바뀌는 와중에 네 가족이 화를 크게 입은 모양이지?”
놀란 숨소리를 삼켰지만 밤 고양이처럼 예민한 사내의 귀는 그것 역시 놓치지 않았다.
“역시 그랬군. 그런데 넌 죽었다 깨어나기 전에는 원수를 갚지 못할 것 같다. 복수란 상대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낼 때까지는 귀신에게도 그 속을 드러내지 않아야만 가능한 법인데 이리 쉽게 속내를 들키니. 쯧쯧. 글렀구나.”
* 이 전자책은 2011년 타출판사에서 출간된〈일월〉을 eBook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복수는 당치 않습니다. 조용히 살다 가는 것이 제 유일한 소망입니다.
역적의 딸.
바로 어제까지 칭송받던 고려의 대신이자 학자의 딸인 채연에게 새로이 붙은 낙인이었다.
동생들을 위해 부엌일을 하는 천한 공녀로 자원해서 명나라로 떠나는데…….
황도로 들어가기 전날 밤, 자결하려는 무사를 발견하고 말리면서 이름 없는 궁녀로 살다 스러지려는 그녀의 소망은 끝이 난다.
그리고 황궁에서 환관인 줄 알고 황태손과 친구가 되면서 평범한 조선 공녀는 황위 계승이라는 소용돌이의 중심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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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출신이냐?”
“무슨 말씀이신지요?”
“네 말투는 아국(我國)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목숨을 건졌지. 아니었다면 난 지금 네 시신을 벗삼아 한잔하고 있었을 것이다.”
“동쪽에 있는 고려의 개경 출신입니다.”
이성계의 나라 이름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아 아직도 그녀에게 익숙한 지명을 댔다.
“고려?”
잠시 고개를 갸웃하는 것 같던 사내의 반문이 어둠 속에서 날아왔다.
“동국(東國) 조선을 말하는 것이냐? 몇 해 전 이씨 성을 가진 장수가 왕씨를 몰아내고 고려 땅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새로 열지 않았던가?”
인정하기 싫지만 고려가 사라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새록새록 억울한 기억들과 서글픔에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려 애쓰는데 그가 재차 물었다.
“그런데 여인이 어째서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거냐?”
“공녀로 선발되었습니다.”
“공녀라……. 이씨 왕가에 원한이 깊은 모양이구나. 왕조가 바뀌는 와중에 네 가족이 화를 크게 입은 모양이지?”
놀란 숨소리를 삼켰지만 밤 고양이처럼 예민한 사내의 귀는 그것 역시 놓치지 않았다.
“역시 그랬군. 그런데 넌 죽었다 깨어나기 전에는 원수를 갚지 못할 것 같다. 복수란 상대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낼 때까지는 귀신에게도 그 속을 드러내지 않아야만 가능한 법인데 이리 쉽게 속내를 들키니. 쯧쯧. 글렀구나.”
* 이 전자책은 2011년 타출판사에서 출간된〈일월〉을 eBook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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