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나를 주다

로맨스 현대물
서혜은(아홉시)
출판사 피우리
출간일 2013년 12월 06일
2점 4점 6점 8점 10점 9.3점 (134건)
작품설명

2013년 종이책 출간작입니다.


비장하게 청소용품을 탁 내리치며 묻는 윤비를 보며 성호가 대답 대신 팔짱을 꼈다. 어디 한 번 해 보라는 식의 그 태도에 윤비의 표정이 더 진지해졌다.
“사장님, 저한테 관심 있으세요?”
“큭.”
질문과 대답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어떤 말보다 더 직설적이게 대답하는 사장을 보며 윤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 지금 무척 진지하거든요?”
“미안.”
“그게 아니라면 왜 자꾸 사람 따라다니세요? 딱 봐도 제 표정이 사장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표정은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을 이런 식으로 계속 쫓아다니는 건 둘 중에 하나 아니에요? 좋아하거나, 아니면 이상한 사람이거나.”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윤비의 말을 듣고 있던 사장이 피식 웃었다.
“그것도 아니면 따라다닐 만큼 신기하고 재미있다거나.”
“…….”
“말했잖아. 너 재미있다고. 날 싫어하는 것도 그 재미 요소 중 하나라고.”
“단지 그게 다예요?”
“실망했다면 미안하지만, 그게 다야.”
“하, 대체 사장님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외계인이에요? 아니면 변태?
윤비는 뒷말을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낸 채 성호를 올려 보았다.
“난 남자 같은 여자, 머리 짧은 여자, 상냥하지 않은 여자, 여자로서 성적이든 이성적이든 매력 없는 여자, 날 싫어하는 여자, 집안으로 엮인 여자, 내 직원인 여자는 사양이야. 넌 그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보기 드문 여자야. 그런 널 내가 좋아한다면, 난 정말 이상한 놈이겠지.”
남자 같은 여자, 여자로서 성적이든 이성적이든 매력 없는 여자…….
충격 먹은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윤비가 얼어붙었다.
“그런 오해를 하고 있을 거라곤 추호도 생각 못 했어. 사장실에서 있었던 일 사과하려다가 장난기가 생겼을 뿐이야. 다시는 그런 오해 하지 않도록 조심할게.”
사장이 웃는 얼굴로 씨알도 먹히지 않는 사과의 말을 건넸다. 있는 충격, 없는 충격 다 먹여 놓고, 정작 가해자는 2층 난간에 서 있을 때 얼굴과 똑같이 웃는 얼굴로 돌아섰다. 저벅저벅 멀어져 가는 사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윤비의 표정이 싸하게 얼어붙었다.
실수하셨어요, 사장님.
툭 소리와 함께 청소용품이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성 잃은 윤비가 달렸다. 윤비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던 성호를 벽으로 밀었다. 생각지 못한 반동에 벽에 머리를 부딪힌 성호가 표정을 찌푸리며 자신의 앞에 선 윤비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짓이야.”
“남자 같은 여자가 벌이는 박진감 넘치는 짓?”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윤비의 눈매가 위를 향해 뻗었다. 갑자기 돌변한 윤비의 표정에 성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새빨간 입술을 벌려 미소 짓던 윤비가 천천히 성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성호의 얼굴 양쪽을 가로막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남녀가 바뀌어도 한참이나 바뀐 자세에 얼떨떨했지만 더 얼떨떨한 것은 윤비의 표정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선머슴으로 보이던 윤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훅 하고 밀려오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성호가 표정을 와락 찌푸렸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재미있는 여자가 하는 재미있는 짓요.”
“너…….”
성호의 입술이 윤비의 손가락에 의해 가로막혔다. 키스할 것처럼 천천히 다가가던 윤비는 아슬아슬하게 성호의 얼굴을 스쳐 지났다. 그러고는 성호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뛰어오느라 약간은 거칠어진 숨소리가 성호의 귓가에 닿았다. 잘 뻗은 성호의 목울대가 빠르게 오르내렸다.
“사장님.”
훅 하고 밀려오는 숨소리에 가느다란 목소리가 함께 뒤섞였다.
“착각하고 있나 본데, 사장님도 내 취향 아니에요.”
“…….”
“거기다가 재미까지 없어.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오해 하지 마요.”
“…….”
“재미있죠? 오늘 밤에 내 모습 생각날 거예요. 물론 난 사장님 생각 안 할 거고요.”
달착지근한 목소리에 섞인 말이 독하다. 느릿하게 얼굴을 떼어 내며 윤비는 픽 하고 웃었다. 위를 향해 날카롭게 뻗어 있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동시에 붉은 입술도 초승달처럼 휘었다. 세 개의 초승달이 뜬 하얀 얼굴을 바라보던 성호의 숨이 멎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한 걸음 물러서자 다시 선머슴 김윤비로 돌아와 있었다. 윤비는 꾸벅 인사를 한 후 떨어뜨렸던 청소용품을 챙겨 후방으로 향했다.
“하.”
후방 문이 닫히고, 직원 출입구 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아련하게 들린 후에야 성호의 입술 새로 뜻 모를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초점을 잡지 못한 눈빛이 흔들렸다.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자에게, 그것도 자신의 가게에서 벽에 밀쳐지는 일은. 말 못 하게 입술을 막고, 귓가에 여자의 숨소리가 노골적으로 닿은 것 또한.
“내가…… 술래, 아니었나.”
넋이 나간 나른한 목소리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러나 누구 하나 대답해 주는 이 없었다. 뒤늦게 서늘한 바람이 불어쳤다. 가슴에 한 번, 머리에 한 번 닿았으나 열기가 내려가질 않는다.
11시 32분.
진성호, 재미 삼아 잡으려고 했던 술래잡기 상대에게 잡혀 버렸다.

작가소개
- 서혜은(아홉시)

무지개처럼 다양한 글을 쓰고 싶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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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2013년 종이책 출간작입니다.


비장하게 청소용품을 탁 내리치며 묻는 윤비를 보며 성호가 대답 대신 팔짱을 꼈다. 어디 한 번 해 보라는 식의 그 태도에 윤비의 표정이 더 진지해졌다.
“사장님, 저한테 관심 있으세요?”
“큭.”
질문과 대답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어떤 말보다 더 직설적이게 대답하는 사장을 보며 윤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 지금 무척 진지하거든요?”
“미안.”
“그게 아니라면 왜 자꾸 사람 따라다니세요? 딱 봐도 제 표정이 사장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표정은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을 이런 식으로 계속 쫓아다니는 건 둘 중에 하나 아니에요? 좋아하거나, 아니면 이상한 사람이거나.”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윤비의 말을 듣고 있던 사장이 피식 웃었다.
“그것도 아니면 따라다닐 만큼 신기하고 재미있다거나.”
“…….”
“말했잖아. 너 재미있다고. 날 싫어하는 것도 그 재미 요소 중 하나라고.”
“단지 그게 다예요?”
“실망했다면 미안하지만, 그게 다야.”
“하, 대체 사장님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외계인이에요? 아니면 변태?
윤비는 뒷말을 표정으로 고스란히 드러낸 채 성호를 올려 보았다.
“난 남자 같은 여자, 머리 짧은 여자, 상냥하지 않은 여자, 여자로서 성적이든 이성적이든 매력 없는 여자, 날 싫어하는 여자, 집안으로 엮인 여자, 내 직원인 여자는 사양이야. 넌 그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보기 드문 여자야. 그런 널 내가 좋아한다면, 난 정말 이상한 놈이겠지.”
남자 같은 여자, 여자로서 성적이든 이성적이든 매력 없는 여자…….
충격 먹은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윤비가 얼어붙었다.
“그런 오해를 하고 있을 거라곤 추호도 생각 못 했어. 사장실에서 있었던 일 사과하려다가 장난기가 생겼을 뿐이야. 다시는 그런 오해 하지 않도록 조심할게.”
사장이 웃는 얼굴로 씨알도 먹히지 않는 사과의 말을 건넸다. 있는 충격, 없는 충격 다 먹여 놓고, 정작 가해자는 2층 난간에 서 있을 때 얼굴과 똑같이 웃는 얼굴로 돌아섰다. 저벅저벅 멀어져 가는 사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윤비의 표정이 싸하게 얼어붙었다.
실수하셨어요, 사장님.
툭 소리와 함께 청소용품이 바닥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성 잃은 윤비가 달렸다. 윤비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던 성호를 벽으로 밀었다. 생각지 못한 반동에 벽에 머리를 부딪힌 성호가 표정을 찌푸리며 자신의 앞에 선 윤비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짓이야.”
“남자 같은 여자가 벌이는 박진감 넘치는 짓?”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윤비의 눈매가 위를 향해 뻗었다. 갑자기 돌변한 윤비의 표정에 성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새빨간 입술을 벌려 미소 짓던 윤비가 천천히 성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성호의 얼굴 양쪽을 가로막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남녀가 바뀌어도 한참이나 바뀐 자세에 얼떨떨했지만 더 얼떨떨한 것은 윤비의 표정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선머슴으로 보이던 윤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훅 하고 밀려오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성호가 표정을 와락 찌푸렸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재미있는 여자가 하는 재미있는 짓요.”
“너…….”
성호의 입술이 윤비의 손가락에 의해 가로막혔다. 키스할 것처럼 천천히 다가가던 윤비는 아슬아슬하게 성호의 얼굴을 스쳐 지났다. 그러고는 성호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뛰어오느라 약간은 거칠어진 숨소리가 성호의 귓가에 닿았다. 잘 뻗은 성호의 목울대가 빠르게 오르내렸다.
“사장님.”
훅 하고 밀려오는 숨소리에 가느다란 목소리가 함께 뒤섞였다.
“착각하고 있나 본데, 사장님도 내 취향 아니에요.”
“…….”
“거기다가 재미까지 없어.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오해 하지 마요.”
“…….”
“재미있죠? 오늘 밤에 내 모습 생각날 거예요. 물론 난 사장님 생각 안 할 거고요.”
달착지근한 목소리에 섞인 말이 독하다. 느릿하게 얼굴을 떼어 내며 윤비는 픽 하고 웃었다. 위를 향해 날카롭게 뻗어 있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동시에 붉은 입술도 초승달처럼 휘었다. 세 개의 초승달이 뜬 하얀 얼굴을 바라보던 성호의 숨이 멎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한 걸음 물러서자 다시 선머슴 김윤비로 돌아와 있었다. 윤비는 꾸벅 인사를 한 후 떨어뜨렸던 청소용품을 챙겨 후방으로 향했다.
“하.”
후방 문이 닫히고, 직원 출입구 문이 닫히는 소리까지 아련하게 들린 후에야 성호의 입술 새로 뜻 모를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초점을 잡지 못한 눈빛이 흔들렸다.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자에게, 그것도 자신의 가게에서 벽에 밀쳐지는 일은. 말 못 하게 입술을 막고, 귓가에 여자의 숨소리가 노골적으로 닿은 것 또한.
“내가…… 술래, 아니었나.”
넋이 나간 나른한 목소리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러나 누구 하나 대답해 주는 이 없었다. 뒤늦게 서늘한 바람이 불어쳤다. 가슴에 한 번, 머리에 한 번 닿았으나 열기가 내려가질 않는다.
11시 32분.
진성호, 재미 삼아 잡으려고 했던 술래잡기 상대에게 잡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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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혜은(아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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