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권력의 속성까지 냉정하게 꿰뚫어 본 사마천의 史記 1(전5권)

사마천
출판사 붐북
출간일 2012년 12월 11일
2점 4점 6점 8점 10점  (0건)
작품설명

자기성찰과 리더십의 교과서
사기는 3천 년 중국사를 다룬 통사(通史)일뿐만 아니라 수많은 황제와 제후에 대한 비판과 분노마저 가감없이 담았으며 인간과 권력의 속성까지 냉정하게 꿰뚫고 있어 자기성찰뿐만 아니라 리더십의 교과서이다.

중국 역사학의 불후의 걸작 史記
『사기(史記)』는 표(表)·서(書)·본기(本紀)·세가(世家)·열전(列傳)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 순서대로 하나의 위계적 동심원을 이룬다.

『사기(史記)』 중국 한나라 때의 역사가인 사마천이 기전체(紀傳體)로 쓴 최초의 역사서이다. 중국 사서(史書)의 전통적인 서술 형식인 연대기, 즉 사건을 연대순으로 배열해 가는 이른바 편년체(編年體)를 지양하였다. 특히, 『열전』은 『본기』나 『세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전기로, 기전체(紀傳體)의 사서(史書)로서 높이 평가될 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가치 또한 매우 높다. 혈연과 문벌에 기초를 둔 주(周)의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오로지 실력만을 제일로 치던 약육강식의 춘추전국시대(戰國時代)로 들어서자 각자의 능력에 따라 부귀공명을 천하에 떨치던 영웅호걸들을 냉정하게 꿰뚫어 보는 눈...

이처럼 방대한 『사기』를 출판함에 있어 전체의 구성을 살리면서 『본기』와 『열전』 가운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주요 부분만을 가려 뽑았다.

『인간과 권력의 속성까지 냉정하게 꿰뚫어 본 사마천의 史記 1』에서는 삼황(三皇) 오제(五帝)와 요(堯) 순(舜) 시대, 하(夏) 은(殷) 주(周) 본기, 백이열전(伯夷列傳), 관중(管仲) 안자(晏子) 열전, 노자(老子) 한비자(韓非子) 열전, 손자(孫子) 오기(吳起) 열전, 중니(仲尼) 제자(弟子) 열전을 수록하였다. 따라서, 이 시대의 자기성찰과 리더십의 교과서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목차>

작가소개
판권
사마천의 史記 1
책머리에
중국 역사학의 불후의 걸작 史記
차례

삼황(三皇) 오제(五帝)와 요(堯) 순(舜) 시대
삼황(三皇) 오제(五帝)
요(堯) 순(舜) 시대

하(夏) 은(殷) 주(周) 본기
하(夏) 본기
은(殷) 본기
주(周) 본기

백이열전(伯夷列傳)
백이(伯夷) 숙제(叔齊) 열전

형체없는 형체, 소리없는 소리
관중(管仲) 안자(晏子) 열전
노자(老子) 한비자(韓非子) 열전

인의(仁義)의 도(道)
중니(仲尼) 제자(弟子) 열전
손자(孫子) 오기(吳起) 열전

사마천 연보(年譜)와 사기 연표(年表)
사마천 연보(年譜)
사기 연표(年表)



<출판사 리뷰>

중국 역사학의 불후의 걸작 史記
『사기(史記)』 중국 한나라 때의 역사가인 사마천이 기전체(紀傳體)로 쓴 최초의 역사서이다. 표(表)·서(書)·본기(本紀)·세가(世家)·열전(列傳)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 순서대로 하나의 위계적 동심원을 이룬다. 특히 『열전』에서 기전체(紀傳體)의 사서(史書)로서 높이 평가될 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가치 또한 매우 높다.

* 투철한 현장경험으로 기술된 歷史
사마천은 스무 살이 될 무렵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천하를 주유(周遊)했다.
사마천은 장안을 떠나 낙양(洛陽)으로 가서 회수(淮水)와 양자강(揚子江) 유역을 돌아 회계산(會稽山)에 올랐으며, 구의산(九疑山)을 둘러보고 원수(沅水)와 상수(湘水)를 건넜으며, 다시 북상해 민수(汶水)와 사수(泗水)를 지나 제(齊)나라와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의 수도 곡부(曲阜)를 거쳐 천하 명산 태산(泰山)에 오르고, 역산(繹山)에도 올랐으며, 파·설(薛)·팽성(彭城)을 들르고 양(梁)·초(楚)를 거쳐서 장안으로 돌아온 후 낭중(郎中) 벼슬에 오른다.
사마천의 투철한 현장경험(역사적 사건의 장소와 풍속을 접하게 된 여행길)은 후에, 중국 역사학의 최고, 불후의 걸작인 『사기』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모태가 된다.

* 궁형의 치욕 속에서도 굳은 사명감으로 기술된 歷史
『사기』 저술에 착수한 지 7년 후 어느날, 사마천에게는 뜻밖의 사건을 맞이한다.
대장군 이능(李陵)이 북방 원정길에 올라 흉노와 대적하여 5천의 정예병으로 1만의 적을 베고도 8만 대군에 포위당하여 항복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격분한 효무제(孝武帝)는 이능을 문책하고자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그만 순수한 열정을 지닌 사마천이 단신으로 이능을 변호하고 나섰다.
“이능 장군만큼 충직하고 용감한 대장군이 어디 있습니까? 역사를 통틀어 어떠한 명장도 5천의 군사로 8만 대군을 무찌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창칼이 꺾이고 화살이 다하자 그는 맨주먹으로 적진에 뛰어들었다고 했습니다. 비록 그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지만 적에게 묶인 바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장군으로서 용맹함을 천하에 떨쳤습니다. 그가 이번에 죽지 못하고 적에게 항복한 것은 폐하를 욕되게 하려 한 짓이 아니라 후일 나라에 보답할 기회를 얻기 위함일 것입니다. 지난날의 혁혁한 대장군의 전공을 잊으시고 어찌 한 번 패한 일을 가지고 벌 주시려 하십니까? 차라리 구원군을 보내주지 않은 총사령관 이광리(李廣利)를 벌하십시오!”
총사령관 이광리는 무제가 가장 아끼는 후궁의 오빠였다. 그렇기에 그것이 화근이었다.
사마천은 그 즉시로 투옥되었고 생식기를 거세(去勢)당하는 궁형(宮刑)에 처해졌다. 다행히 목숨은 부지 할수 있었지만 남성으로서는 가장 치욕적인 형벌이며 악취나게 썩어 문들어지는 부형(腐刑)이었다.
.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 지금까지 저술한 중국의 통사(通史)를 마쳐야 한다! 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시면서 권장하던 일이 아니던가.”
사마천은 생식기를 거세당한 인간 이하의 인간으로서나마 살아 남기로 마음을 곧추세웠다. 그는 친구 임소경(任少卿)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때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최선의 죽음이란 조상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이고, 차선의 죽음이란 제 몸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이고, 셋째로는 자신의 면목을 잃게 하지 않는 것이고, 넷째로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 생각하오. 또한 그보다 못한 것으로는 신체의 책임을 지는 것이라 생각하오. 신체의 자유가 구속되어 부끄러움을 당하고, 붉은 수의(囚衣)를 입게 되어 부끄러움을 당하고, 수갑이나 차꼬를 차고 볼기를 맞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모발을 잘리고 쇠사슬에 감겨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코나 귀를 잘리고, 입묵(入墨)을 당하고, 팔다리를 잘리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이오. 그런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형벌이란 것이 바로 궁형이 아니겠소. 부끄러움의 극치겠지요, 이런 형벌을 받는 죄수야말로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그대도 잘 알고 있을 거요.

*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하늘의 도(天道)는 사사롭지 않고 늘 착한 이와 함께 한다고 하는데, 백이와 숙제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인가? 그들은 행실이 그토록 고결해도 굶어죽었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 가운데 진정 학문을 좋아하는 이는 안연이라 했지만, 안연은 자주 궁핍하여 굶주리다가 끝내 요절했다. 극악무도한 도척은 날마다 무고한 이를 죽이고 사람의 간을 꺼내 먹었으며 무리 수천 명을 모아 포악방자하게 천하를 횡행했지만 끝내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 이른바 하늘의 도라고 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그른가(天道是邪非邪)?”

오늘도 수양산에 올라
고사리를 캔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바꾸고도
무왕(武王)은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과 순우의 호시절은
꿈인듯 홀연히 사라졌구나.
[채미지가 中에서]

“백이·숙제는 불의를 혐오했지만 사람을 미워하진 않았다. 그것은 주나라 무왕의 악(惡)을 비유했으면서도 스스로 남을 원망하지는 않았으며, 자신이 원망받지도 않았다. 이는 자신이 인덕(仁德)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군자(君子)란 세상을 마친 후에도 이름이 칭송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자이다. 백이·숙제도 이와 다름이 없다.”

한(漢)의 가자(賈子:賈誼)는, 탐욕한 사람은 재물에 목숨을 걸고, 의열(義烈)한 사람은 명예에 목숨을 걸며, 권세욕이 강한 사람은 그것에 끌려 죽고, 범용(凡庸)한 사람은 제 생명이나 탐하고 아낄 뿐이라고 했다. 같은 종류의 광명은 서로 비춰주며 같은 종류의 만물을 서로 구하고, 구름은 용을 따라 용솟음치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라 곧바로 일어난다. 이는 성인(聖人)이 나타나면 만인이 우러러보는 것처럼 백이·숙제가 현인이긴 하지만 비로소 공자의 칭송을 얻음으로써 그 이름이 드러난 것이다.

작가소개
저자 : 사마천(司馬遷) BC 145 ~ BC 86(추정)

한나라 전성기인 한 무제 때 활동한 역사학자이자 문학자. 자 자장(子長). 섬서성(陝西省) 용문(龍門: 현재 韓城縣)시 하양(夏陽)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사마담(司馬談)으로 사마천이 7세 때 아버지가 천문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太史令)이 된 이후 무릉(武陵)에 거주하였다. 사마담은 아들 사마천에게 어린 시절부터 고전 문헌을 구해 읽도록 가르쳤다. 사마천이 약 20세가 되던해 낭중(郎中:황제의 시종)이 되어 무제를 수행하여 강남[江南]·산둥[山東]·허난[河南] 등의 지방을 여행하였다. 기원 전 110년 아버지 사마담이 죽으면서 자신이 시작한 《사기》의 완성을 부탁하였고, 그 유지를 받들어 BC 108년 태사령이 되면서 황실 도서에서 자료 수집을 시작하였다. BC 104년(무제 태초 원년) 천문 역법의 전문가로서 태초력(太初曆)의 제정에 참여한 직후 《사기》 저술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다. 그러나 그는 흉노의 포위 속에서 부득이하게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릉(李陵) 장군을 변호하다 황제인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BC 99년 사마천의 나이 48세 되던 해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宮刑: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받았다. 사마천은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였으며 BC 95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그는 환관(宦官)신분으로 일부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았으며 운신의 폭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마천은 마침내 《사기》를 완성하였다. 사마천은 《사기》가 완성된 2년 후에 사망하였다. 사마천은 자신이 저서를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불렀지만 후한시대에 들어와 《사기》라고 불리게 되었다.


역자 : 신윤석

1964년 서울 출생. 호는 만호. 역서에 《사씨남정기》 《새무얼 스마일즈의 인격론1, 2》 《세계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지혜의 원천 탈무드1,2》 《톨스토이의 행복만들기》 《인재를 활용하는 능력을 키워라》 《초한지1,2,3,4,5,6,7,8》 《톨스토이의 행복한 성공의 힐링 숲1,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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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설명

자기성찰과 리더십의 교과서
사기는 3천 년 중국사를 다룬 통사(通史)일뿐만 아니라 수많은 황제와 제후에 대한 비판과 분노마저 가감없이 담았으며 인간과 권력의 속성까지 냉정하게 꿰뚫고 있어 자기성찰뿐만 아니라 리더십의 교과서이다.

중국 역사학의 불후의 걸작 史記
『사기(史記)』는 표(表)·서(書)·본기(本紀)·세가(世家)·열전(列傳)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 순서대로 하나의 위계적 동심원을 이룬다.

『사기(史記)』 중국 한나라 때의 역사가인 사마천이 기전체(紀傳體)로 쓴 최초의 역사서이다. 중국 사서(史書)의 전통적인 서술 형식인 연대기, 즉 사건을 연대순으로 배열해 가는 이른바 편년체(編年體)를 지양하였다. 특히, 『열전』은 『본기』나 『세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전기로, 기전체(紀傳體)의 사서(史書)로서 높이 평가될 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가치 또한 매우 높다. 혈연과 문벌에 기초를 둔 주(周)의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오로지 실력만을 제일로 치던 약육강식의 춘추전국시대(戰國時代)로 들어서자 각자의 능력에 따라 부귀공명을 천하에 떨치던 영웅호걸들을 냉정하게 꿰뚫어 보는 눈...

이처럼 방대한 『사기』를 출판함에 있어 전체의 구성을 살리면서 『본기』와 『열전』 가운데 우리에게 꼭 필요한 주요 부분만을 가려 뽑았다.

『인간과 권력의 속성까지 냉정하게 꿰뚫어 본 사마천의 史記 1』에서는 삼황(三皇) 오제(五帝)와 요(堯) 순(舜) 시대, 하(夏) 은(殷) 주(周) 본기, 백이열전(伯夷列傳), 관중(管仲) 안자(晏子) 열전, 노자(老子) 한비자(韓非子) 열전, 손자(孫子) 오기(吳起) 열전, 중니(仲尼) 제자(弟子) 열전을 수록하였다. 따라서, 이 시대의 자기성찰과 리더십의 교과서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목차>

작가소개
판권
사마천의 史記 1
책머리에
중국 역사학의 불후의 걸작 史記
차례

삼황(三皇) 오제(五帝)와 요(堯) 순(舜) 시대
삼황(三皇) 오제(五帝)
요(堯) 순(舜) 시대

하(夏) 은(殷) 주(周) 본기
하(夏) 본기
은(殷) 본기
주(周) 본기

백이열전(伯夷列傳)
백이(伯夷) 숙제(叔齊) 열전

형체없는 형체, 소리없는 소리
관중(管仲) 안자(晏子) 열전
노자(老子) 한비자(韓非子) 열전

인의(仁義)의 도(道)
중니(仲尼) 제자(弟子) 열전
손자(孫子) 오기(吳起) 열전

사마천 연보(年譜)와 사기 연표(年表)
사마천 연보(年譜)
사기 연표(年表)



<출판사 리뷰>

중국 역사학의 불후의 걸작 史記
『사기(史記)』 중국 한나라 때의 역사가인 사마천이 기전체(紀傳體)로 쓴 최초의 역사서이다. 표(表)·서(書)·본기(本紀)·세가(世家)·열전(列傳)으로 구성돼 있으며, 그 순서대로 하나의 위계적 동심원을 이룬다. 특히 『열전』에서 기전체(紀傳體)의 사서(史書)로서 높이 평가될 뿐만 아니라 문학적인 가치 또한 매우 높다.

* 투철한 현장경험으로 기술된 歷史
사마천은 스무 살이 될 무렵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천하를 주유(周遊)했다.
사마천은 장안을 떠나 낙양(洛陽)으로 가서 회수(淮水)와 양자강(揚子江) 유역을 돌아 회계산(會稽山)에 올랐으며, 구의산(九疑山)을 둘러보고 원수(沅水)와 상수(湘水)를 건넜으며, 다시 북상해 민수(汶水)와 사수(泗水)를 지나 제(齊)나라와 공자가 태어난 노(魯)나라의 수도 곡부(曲阜)를 거쳐 천하 명산 태산(泰山)에 오르고, 역산(繹山)에도 올랐으며, 파·설(薛)·팽성(彭城)을 들르고 양(梁)·초(楚)를 거쳐서 장안으로 돌아온 후 낭중(郎中) 벼슬에 오른다.
사마천의 투철한 현장경험(역사적 사건의 장소와 풍속을 접하게 된 여행길)은 후에, 중국 역사학의 최고, 불후의 걸작인 『사기』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모태가 된다.

* 궁형의 치욕 속에서도 굳은 사명감으로 기술된 歷史
『사기』 저술에 착수한 지 7년 후 어느날, 사마천에게는 뜻밖의 사건을 맞이한다.
대장군 이능(李陵)이 북방 원정길에 올라 흉노와 대적하여 5천의 정예병으로 1만의 적을 베고도 8만 대군에 포위당하여 항복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격분한 효무제(孝武帝)는 이능을 문책하고자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그만 순수한 열정을 지닌 사마천이 단신으로 이능을 변호하고 나섰다.
“이능 장군만큼 충직하고 용감한 대장군이 어디 있습니까? 역사를 통틀어 어떠한 명장도 5천의 군사로 8만 대군을 무찌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창칼이 꺾이고 화살이 다하자 그는 맨주먹으로 적진에 뛰어들었다고 했습니다. 비록 그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지만 적에게 묶인 바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장군으로서 용맹함을 천하에 떨쳤습니다. 그가 이번에 죽지 못하고 적에게 항복한 것은 폐하를 욕되게 하려 한 짓이 아니라 후일 나라에 보답할 기회를 얻기 위함일 것입니다. 지난날의 혁혁한 대장군의 전공을 잊으시고 어찌 한 번 패한 일을 가지고 벌 주시려 하십니까? 차라리 구원군을 보내주지 않은 총사령관 이광리(李廣利)를 벌하십시오!”
총사령관 이광리는 무제가 가장 아끼는 후궁의 오빠였다. 그렇기에 그것이 화근이었다.
사마천은 그 즉시로 투옥되었고 생식기를 거세(去勢)당하는 궁형(宮刑)에 처해졌다. 다행히 목숨은 부지 할수 있었지만 남성으로서는 가장 치욕적인 형벌이며 악취나게 썩어 문들어지는 부형(腐刑)이었다.
.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 지금까지 저술한 중국의 통사(通史)를 마쳐야 한다! 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시면서 권장하던 일이 아니던가.”
사마천은 생식기를 거세당한 인간 이하의 인간으로서나마 살아 남기로 마음을 곧추세웠다. 그는 친구 임소경(任少卿)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때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최선의 죽음이란 조상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이고, 차선의 죽음이란 제 몸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이고, 셋째로는 자신의 면목을 잃게 하지 않는 것이고, 넷째로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 생각하오. 또한 그보다 못한 것으로는 신체의 책임을 지는 것이라 생각하오. 신체의 자유가 구속되어 부끄러움을 당하고, 붉은 수의(囚衣)를 입게 되어 부끄러움을 당하고, 수갑이나 차꼬를 차고 볼기를 맞아 부끄러움을 당하고, 모발을 잘리고 쇠사슬에 감겨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코나 귀를 잘리고, 입묵(入墨)을 당하고, 팔다리를 잘리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이오. 그런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형벌이란 것이 바로 궁형이 아니겠소. 부끄러움의 극치겠지요, 이런 형벌을 받는 죄수야말로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그대도 잘 알고 있을 거요.

*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하늘의 도(天道)는 사사롭지 않고 늘 착한 이와 함께 한다고 하는데, 백이와 숙제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인가? 그들은 행실이 그토록 고결해도 굶어죽었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 가운데 진정 학문을 좋아하는 이는 안연이라 했지만, 안연은 자주 궁핍하여 굶주리다가 끝내 요절했다. 극악무도한 도척은 날마다 무고한 이를 죽이고 사람의 간을 꺼내 먹었으며 무리 수천 명을 모아 포악방자하게 천하를 횡행했지만 끝내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 이른바 하늘의 도라고 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그른가(天道是邪非邪)?”

오늘도 수양산에 올라
고사리를 캔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바꾸고도
무왕(武王)은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과 순우의 호시절은
꿈인듯 홀연히 사라졌구나.
[채미지가 中에서]

“백이·숙제는 불의를 혐오했지만 사람을 미워하진 않았다. 그것은 주나라 무왕의 악(惡)을 비유했으면서도 스스로 남을 원망하지는 않았으며, 자신이 원망받지도 않았다. 이는 자신이 인덕(仁德)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군자(君子)란 세상을 마친 후에도 이름이 칭송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자이다. 백이·숙제도 이와 다름이 없다.”

한(漢)의 가자(賈子:賈誼)는, 탐욕한 사람은 재물에 목숨을 걸고, 의열(義烈)한 사람은 명예에 목숨을 걸며, 권세욕이 강한 사람은 그것에 끌려 죽고, 범용(凡庸)한 사람은 제 생명이나 탐하고 아낄 뿐이라고 했다. 같은 종류의 광명은 서로 비춰주며 같은 종류의 만물을 서로 구하고, 구름은 용을 따라 용솟음치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라 곧바로 일어난다. 이는 성인(聖人)이 나타나면 만인이 우러러보는 것처럼 백이·숙제가 현인이긴 하지만 비로소 공자의 칭송을 얻음으로써 그 이름이 드러난 것이다.

작가소개
저자 : 사마천(司馬遷) BC 145 ~ BC 86(추정)

한나라 전성기인 한 무제 때 활동한 역사학자이자 문학자. 자 자장(子長). 섬서성(陝西省) 용문(龍門: 현재 韓城縣)시 하양(夏陽)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사마담(司馬談)으로 사마천이 7세 때 아버지가 천문 역법과 도서를 관장하는 태사령(太史令)이 된 이후 무릉(武陵)에 거주하였다. 사마담은 아들 사마천에게 어린 시절부터 고전 문헌을 구해 읽도록 가르쳤다. 사마천이 약 20세가 되던해 낭중(郎中:황제의 시종)이 되어 무제를 수행하여 강남[江南]·산둥[山東]·허난[河南] 등의 지방을 여행하였다. 기원 전 110년 아버지 사마담이 죽으면서 자신이 시작한 《사기》의 완성을 부탁하였고, 그 유지를 받들어 BC 108년 태사령이 되면서 황실 도서에서 자료 수집을 시작하였다. BC 104년(무제 태초 원년) 천문 역법의 전문가로서 태초력(太初曆)의 제정에 참여한 직후 《사기》 저술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다. 그러나 그는 흉노의 포위 속에서 부득이하게 투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릉(李陵) 장군을 변호하다 황제인 무제의 노여움을 사서, BC 99년 사마천의 나이 48세 되던 해 남자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宮刑:생식기를 제거하는 형벌)을 받았다. 사마천은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였으며 BC 95년 황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의 최고직인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그는 환관(宦官)신분으로 일부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았으며 운신의 폭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마천은 마침내 《사기》를 완성하였다. 사마천은 《사기》가 완성된 2년 후에 사망하였다. 사마천은 자신이 저서를 《태사공서(太史公書)》라고 불렀지만 후한시대에 들어와 《사기》라고 불리게 되었다.


역자 : 신윤석

1964년 서울 출생. 호는 만호. 역서에 《사씨남정기》 《새무얼 스마일즈의 인격론1, 2》 《세계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지혜의 원천 탈무드1,2》 《톨스토이의 행복만들기》 《인재를 활용하는 능력을 키워라》 《초한지1,2,3,4,5,6,7,8》 《톨스토이의 행복한 성공의 힐링 숲1,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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