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일반서
류성룡
출판사 포레스트 위즈덤
출간일 2024년 04월 08일
2점 4점 6점 8점 10점  (0건)
작품설명

서해 류성룡이 왜란 7년을 겪은 후, 후세에 남긴 쓰라린 반성의 기록
“여해, 참 멀고도 험한 길이었네. 우리 백성들, 그 불어터진 발로 피 흘리며 겨우 살아서 여기까지 왔네 그려. 이제는 후학들이 그 상처 난 발을 닦아주고 감싸줘야 할 텐데, 또 다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 듯 자신의 길만 보고 걸어갈까 봐 걱정일세.”
류성룡이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도에서 자신이 겪은 임진왜란의 원인과 7년간의 전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임진왜란 당시 그는 영의정과 도체찰사로 군무와 국정 운영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류성룡은 이 책에서 임진왜란을 일본이 조선과 중국을 모두 침략한 동아시아 전쟁으로 파악하였다. 특히 징비록은 근세 일본인들에게 임진왜란을 알려 주는 주요한 사료로 인식되어 많이 인용되고 있으며, 『난중일기』와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차례

자서(自序)

징비록 1권
전란 전의 대일 관계
삼남 지방의 경계와 이순신의 기용
임진왜란의 발발과 서전(緖戰)의 붕괴
국왕의 피란과 구원군의 요청
평양성 함락과 명나라 구원병
조선 수군의 승전
군민의 분기와 의병의 활동

징비록 2권
명군의 지원과 평양 수복
전선의 교착
화의의 제기와 한양 수복
강화 실패와 정유재란 발발
이순신의 투옥과 수군의 전몰
이순신의 재기와 전세의 정비
적군의 퇴로와 마지막 해전
구국의 영웅, 이순신

녹후잡기
전란의 조짐
왜란을 겪은 후 반성과 대비책
명나라 장수 심유경의 서신

참고문헌

작가소개
- 류성룡(柳成龍, 1542 ~ 1607)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문신
본관 풍산(豊山). 자 이현(而見). 호 서애(西厓). 시호 문충(文忠). 과거를 통해 관료로 등용되어 서인이 아닌 이산해와 같은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를 계기로 강경파인 아계 이산해, 정인홍 등과 결별하고 남인을 형성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군관인 이순신을 천거하여 선조로 하여금 전라좌수사로 임명하도록 하였으며 이순신으로 하여금 임진왜란 당시 열세였던 조선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임진왜란에 4도 도체찰사, 영의정으로 어려운 조선 조정을 총지휘하였다. 노량해전과 같은 날에, 정인홍, 이이첨 등의 북인의 상소로 인해 영의정에서 관직삭탈 된다. 안동으로 내려가 선조의 부름에도 올라가지 않고 임진왜란 때 겪은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국보 제132호이다. 죽을 때까지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던 청백리이면서 ‘조선의 5대 명재상(名宰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저서로 『징비록懲毖錄』, 『서애집西厓集』, 『난후잡록亂後雜錄』, 『신종록愼終錄』, 『영모록永慕錄』, 『관화록觀化錄』, 『운암잡기雲巖雜記』 등이 있다.

더보기
작품설명

서해 류성룡이 왜란 7년을 겪은 후, 후세에 남긴 쓰라린 반성의 기록
“여해, 참 멀고도 험한 길이었네. 우리 백성들, 그 불어터진 발로 피 흘리며 겨우 살아서 여기까지 왔네 그려. 이제는 후학들이 그 상처 난 발을 닦아주고 감싸줘야 할 텐데, 또 다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 듯 자신의 길만 보고 걸어갈까 봐 걱정일세.”
류성룡이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의도에서 자신이 겪은 임진왜란의 원인과 7년간의 전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임진왜란 당시 그는 영의정과 도체찰사로 군무와 국정 운영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류성룡은 이 책에서 임진왜란을 일본이 조선과 중국을 모두 침략한 동아시아 전쟁으로 파악하였다. 특히 징비록은 근세 일본인들에게 임진왜란을 알려 주는 주요한 사료로 인식되어 많이 인용되고 있으며, 『난중일기』와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차례

자서(自序)

징비록 1권
전란 전의 대일 관계
삼남 지방의 경계와 이순신의 기용
임진왜란의 발발과 서전(緖戰)의 붕괴
국왕의 피란과 구원군의 요청
평양성 함락과 명나라 구원병
조선 수군의 승전
군민의 분기와 의병의 활동

징비록 2권
명군의 지원과 평양 수복
전선의 교착
화의의 제기와 한양 수복
강화 실패와 정유재란 발발
이순신의 투옥과 수군의 전몰
이순신의 재기와 전세의 정비
적군의 퇴로와 마지막 해전
구국의 영웅, 이순신

녹후잡기
전란의 조짐
왜란을 겪은 후 반성과 대비책
명나라 장수 심유경의 서신

참고문헌

작가소개
- 류성룡(柳成龍, 1542 ~ 1607)

임진왜란 당시 군사와 외교에서 핵심 업무를 맡았던 문신
본관 풍산(豊山). 자 이현(而見). 호 서애(西厓). 시호 문충(文忠). 과거를 통해 관료로 등용되어 서인이 아닌 이산해와 같은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정여립의 난과 기축옥사를 계기로 강경파인 아계 이산해, 정인홍 등과 결별하고 남인을 형성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 군관인 이순신을 천거하여 선조로 하여금 전라좌수사로 임명하도록 하였으며 이순신으로 하여금 임진왜란 당시 열세였던 조선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임진왜란에 4도 도체찰사, 영의정으로 어려운 조선 조정을 총지휘하였다. 노량해전과 같은 날에, 정인홍, 이이첨 등의 북인의 상소로 인해 영의정에서 관직삭탈 된다. 안동으로 내려가 선조의 부름에도 올라가지 않고 임진왜란 때 겪은 후회와 교훈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국보 제132호이다. 죽을 때까지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던 청백리이면서 ‘조선의 5대 명재상(名宰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저서로 『징비록懲毖錄』, 『서애집西厓集』, 『난후잡록亂後雜錄』, 『신종록愼終錄』, 『영모록永慕錄』, 『관화록觀化錄』, 『운암잡기雲巖雜記』 등이 있다.

더보기

캐시로 구매 시 보너스 1% 적립!

전체선택

징비록

11,800원
총 0권 선택

총 금액 0원  

최종 결제 금액  0원 적립보너스 0P

리뷰(0) 아직 리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