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을 헤쳐 나가면서 기록한 역사적 기록물이자 중수필이다. 여기에는 전쟁의 원인서부터 전쟁이 전개되는 과정, 인물들의 평이 객관적으로 쓰여 있다. 또 명나라가 개입해 어떤 도움을 주고 어떤 해를 입혔는지, 당시 장수들과 백성들은 어떻게 난을 이겨나갔는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잘잘못을 평가하도록 함으로써 후세에 교훈을 주고 있다.
작가소개
- 유성룡(柳成龍, 1542~1607)
호 서애(西厓). 1542년(중종 37) 10월, 아버지 유중영(柳仲?, 1515~1573))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남. 1558년 17세 때 세종대왕의 아들 광평대군의 5세손 이경의 딸과 혼인했다. 형은 유운룡(1539-1601)이며 부친인 유중영은 1540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의주목사ㆍ황해도관찰사ㆍ예조참의를 두루 거친 강직한 관료였다. 당시 이름이 없던무관, 이순신을 적극 중용하도록 힘써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기울어 가는 나라를 구했고 벼슬에서 물러난 뒤 노후에 후손들이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의 교훈을 적은 《징비록》을 남겼다.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을 헤쳐 나가면서 기록한 역사적 기록물이자 중수필이다. 여기에는 전쟁의 원인서부터 전쟁이 전개되는 과정, 인물들의 평이 객관적으로 쓰여 있다. 또 명나라가 개입해 어떤 도움을 주고 어떤 해를 입혔는지, 당시 장수들과 백성들은 어떻게 난을 이겨나갔는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잘잘못을 평가하도록 함으로써 후세에 교훈을 주고 있다.
작가소개
- 유성룡(柳成龍, 1542~1607)
호 서애(西厓). 1542년(중종 37) 10월, 아버지 유중영(柳仲?, 1515~1573))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남. 1558년 17세 때 세종대왕의 아들 광평대군의 5세손 이경의 딸과 혼인했다. 형은 유운룡(1539-1601)이며 부친인 유중영은 1540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의주목사ㆍ황해도관찰사ㆍ예조참의를 두루 거친 강직한 관료였다. 당시 이름이 없던무관, 이순신을 적극 중용하도록 힘써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기울어 가는 나라를 구했고 벼슬에서 물러난 뒤 노후에 후손들이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의 교훈을 적은 《징비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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