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파크

김지훈
출판사 노블레스클럽
출간일 2013년 10월 11일
2점 4점 6점 8점 10점  (0건)
작품설명

캄캄하고 무거운 과거 위로 평온하고 가벼운 현재를 쌓아 올리려는 남자, 렘지.
모든 것을 가졌으나 하나를 잃고 그 하나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을 뻔 한 남자, 드살보.
인간들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상을 꿈꾸며 동화적인 환상을 완벽한 현실로 이루어 낸 남자, 이드.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가장 저열한 쾌락을 좇다가 환상의 미혹에 붙잡힌 남자, 크리스.
그들이 펼쳐내는 사랑이야기.

김지훈의 장편 소설 『크레타파크』



<본문중에서>

“자네가 오기 전에 이 마을에는 범죄가 들끓었어. 세 개의 갱 조직이 주도권을 두고 다투고 있었지.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몰랐기 때문에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어야 했네. 그런데 자네가 온 후, 갱 조직은 무너지고 범죄는 자취를 감췄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래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부동산 중개업자가 저에게 거짓말을 한 거군요. 이 마을은 아주 평화로운 곳이라고 했거든요.”
“그게 흥미로운 부분이야. 자네에게 집을 판 부동산 중개업자도 저격으로 숨졌거든.”

작심한 듯 유진에게 물었다.
“왜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남자들은 항상 바보가 되는 걸까요?”
“바보가 ‘되지 못하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나 보죠.”
유진의 목소리는 상담 요원처럼 침착하고 객관적이었다. 렘지는 웃었다.
“바보가 될 수 있는 남자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건 진화론적 입장에서 차분하게 연구해 봐야겠지만, 일단은 인생의 코미디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렘지는 유진의 입술에 키스를 하려 했다. 최초의 키스이기에 우아한 탄젠트곡선을 따라 접근했다. 사랑을 축복하는 개구리와 풀벌레의 합창. 은총을 내려 주는 별빛과 달빛. 자신의 달콤한 키스가 여자를 기절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긴장한 렘지의 몸은 너무나 성급했다. 그의 머리가 유진의 코를 들이받았다. 충격으로 유진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왜 이러시는 거죠?”
유진은 손으로 코를 감쌌다. 손안에서 미끄러운 액체가 느껴졌다. 쌍코피였다.
“저를 기절시킬 셈이었나요?”

앤티크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전에는 모든 것이 분명했다. 세상에는 나쁜 놈과 좋은 놈이 있고, 나쁜 놈은 모조리 죽어 마땅했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을 구분하는 것도 쉬웠다. 렘지가 속한 곳은 항상 ‘좋은 놈’이었고, 그의 총부리 끝에 서 있는 상대는 언제나 ‘나쁜 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나 복잡해졌다.

“이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어요. 그런 일을 할 때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죠. 베로니카, 사실 제가 살아서 돌아올 확률은 많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유진을 위한 겁니다. 제가 죽더라도…….”

렘지는 손을 더듬어, 복부에 꽂혀 있는 단검을 잡고, 비틀었다. 통증이 의식을 깨워 줄 것이다. 고통은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킬 것이고, 잠시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저격은 찰나의 예술이다. 며칠 밤을 지새울 필요는 없다. 단 몇 초면 충분하다.
단검을 비틀고 있는 렘지의 손이 피로 흥건해졌다. 데이비드가 그의 손을 잡았다. 렘지가 말했다.
“……그냥 놔줘. 지금 나에겐 고통이 필요해.”
데이비드는 슬며시 손을 놓았다.
펠릭스는 감각 사격을 하기 전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실제로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렘지는 그가 늙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렘지 역시 최초로 감각 사격을 성공시키기 전에 눈물을 흘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죽임을 당하는 생명에 대한 예우일 수도 있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때 나타나는 생리 현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렘지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렘지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유진의 생명이었다.
렘지는 크라메스와 자신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렘지가 유진을 구하려는 것은 크라메스가 공주를 위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았다.
방아쇠를 당기고 나서 ‘정말 잘한 일이다.’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잠시 들뜬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느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결국에는 언제나 뜨거운 설탕 시럽처럼 끈적거리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면 평생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렘지는 방아쇠를 당겼다.
_ 본문 중에서

작가소개
- 김지훈 (Kim, ji Hun / CAN COFFEE)

다듬고 또 다듬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손보는 작가.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는 온기를 품은 그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게 한다. 으로 제1회 한국인터넷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스키마>, , <더미> 등의 작품을 썼다.

더보기
작품설명

캄캄하고 무거운 과거 위로 평온하고 가벼운 현재를 쌓아 올리려는 남자, 렘지.
모든 것을 가졌으나 하나를 잃고 그 하나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을 뻔 한 남자, 드살보.
인간들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상을 꿈꾸며 동화적인 환상을 완벽한 현실로 이루어 낸 남자, 이드.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가장 저열한 쾌락을 좇다가 환상의 미혹에 붙잡힌 남자, 크리스.
그들이 펼쳐내는 사랑이야기.

김지훈의 장편 소설 『크레타파크』



<본문중에서>

“자네가 오기 전에 이 마을에는 범죄가 들끓었어. 세 개의 갱 조직이 주도권을 두고 다투고 있었지.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몰랐기 때문에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어야 했네. 그런데 자네가 온 후, 갱 조직은 무너지고 범죄는 자취를 감췄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그래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부동산 중개업자가 저에게 거짓말을 한 거군요. 이 마을은 아주 평화로운 곳이라고 했거든요.”
“그게 흥미로운 부분이야. 자네에게 집을 판 부동산 중개업자도 저격으로 숨졌거든.”

작심한 듯 유진에게 물었다.
“왜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남자들은 항상 바보가 되는 걸까요?”
“바보가 ‘되지 못하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나 보죠.”
유진의 목소리는 상담 요원처럼 침착하고 객관적이었다. 렘지는 웃었다.
“바보가 될 수 있는 남자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건 진화론적 입장에서 차분하게 연구해 봐야겠지만, 일단은 인생의 코미디 같아요. 그렇지 않나요?”

렘지는 유진의 입술에 키스를 하려 했다. 최초의 키스이기에 우아한 탄젠트곡선을 따라 접근했다. 사랑을 축복하는 개구리와 풀벌레의 합창. 은총을 내려 주는 별빛과 달빛. 자신의 달콤한 키스가 여자를 기절시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긴장한 렘지의 몸은 너무나 성급했다. 그의 머리가 유진의 코를 들이받았다. 충격으로 유진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왜 이러시는 거죠?”
유진은 손으로 코를 감쌌다. 손안에서 미끄러운 액체가 느껴졌다. 쌍코피였다.
“저를 기절시킬 셈이었나요?”

앤티크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전에는 모든 것이 분명했다. 세상에는 나쁜 놈과 좋은 놈이 있고, 나쁜 놈은 모조리 죽어 마땅했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을 구분하는 것도 쉬웠다. 렘지가 속한 곳은 항상 ‘좋은 놈’이었고, 그의 총부리 끝에 서 있는 상대는 언제나 ‘나쁜 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너무나 복잡해졌다.

“이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어요. 그런 일을 할 때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죠. 베로니카, 사실 제가 살아서 돌아올 확률은 많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유진을 위한 겁니다. 제가 죽더라도…….”

렘지는 손을 더듬어, 복부에 꽂혀 있는 단검을 잡고, 비틀었다. 통증이 의식을 깨워 줄 것이다. 고통은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킬 것이고, 잠시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저격은 찰나의 예술이다. 며칠 밤을 지새울 필요는 없다. 단 몇 초면 충분하다.
단검을 비틀고 있는 렘지의 손이 피로 흥건해졌다. 데이비드가 그의 손을 잡았다. 렘지가 말했다.
“……그냥 놔줘. 지금 나에겐 고통이 필요해.”
데이비드는 슬며시 손을 놓았다.
펠릭스는 감각 사격을 하기 전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실제로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렘지는 그가 늙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렘지 역시 최초로 감각 사격을 성공시키기 전에 눈물을 흘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자신에게 죽임을 당하는 생명에 대한 예우일 수도 있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때 나타나는 생리 현상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렘지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렘지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유진의 생명이었다.
렘지는 크라메스와 자신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렘지가 유진을 구하려는 것은 크라메스가 공주를 위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았다.
방아쇠를 당기고 나서 ‘정말 잘한 일이다.’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잠시 들뜬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느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결국에는 언제나 뜨거운 설탕 시럽처럼 끈적거리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방아쇠를 당기면 평생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렘지는 방아쇠를 당겼다.
_ 본문 중에서

작가소개
- 김지훈 (Kim, ji Hun / CAN COFFEE)

다듬고 또 다듬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손보는 작가.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는 온기를 품은 그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게 한다. 으로 제1회 한국인터넷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스키마>, , <더미> 등의 작품을 썼다.

더보기

캐시로 구매 시 보너스 1% 적립!

전체선택

크레타 파크

4,800원
총 0권 선택

총 금액 0원  

최종 결제 금액  0원 적립보너스 0P

리뷰(0) 아직 리뷰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