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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 2/2
최은영 지음 | 피우리 펴냄 | 로맨스(현대물)
용량 : 410 KB | 2006년 05월 0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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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피우리

책 소개

최은영 님의 장편 로맨스.
2002년 종이책으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수수께끼 풀기, 그 3년 후
영원한 행복을 위해 고통의 길로 들어선 이준과 지연.
그리고 그 길에 휘말려버린 찬혁과 서영.
네 사람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작가 소개

최은영
종이책 출간작 -수수께기풀기, 플러스, 오래된 거짓말, 늑대날다

<작품소개>
2002년 종이책으로 출간된 작품으로,
'수수께끼 풀기' - '플러스 1,2' - '플러스 그 후' 로 이어지는 시리즈 물 입니다.

수수께끼 풀기, 그 3년 후

그들은 가족이었다.
누가 뭐라해도, 정말 행복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평생 그 상처를 끌어안고 살게 되더라도 영원한 행복을 위해
고통의 길로 들어선 이준과 지연.
그리고 그 길에 휘말려버린 찬혁과 서영.

네 사람의 상처투성이인 길의 종착점은 어디일까?

-본문 중에서

더운 여름이었다. 지난해보다 더 뜨거운 폭염이 일찍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비마저 오지 않아 마른 땅이 쩍쩍 갈라지는 뜨겁기만 한 여름이었다. 더운 여름보다 더한 불덩이를 안은 지연은 여름을 힘겹게 이겨 나가고 있었다.
비라도 내렸으면 했다. 메마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지연의 마음을 적셔줄 작은 단비가 내려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하늘은 계속해서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내려 쪼이고 있을 뿐이었다. 지독한 폭염이었다.
이준이 떠난 지 삼 개월이 되고 있었다. 그 사이 전화 한 통도 없는 무심한 사람! 아니 오히려 연락이 오기라도 하여 그 목소리나 숨결 하나에 스스로 기껏 다잡은 독한 결심이 무너질까 봐 걱정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그 어떤 쪽으로도 바라는 것이 기울어지지 않았다. 그냥 시시각각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연의 바람이 계속 바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두 마음이 지연을 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 지연은 운 좋게도 영어 학원에서 강의를 맡았다. 다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그 순간만큼은 지연에게 즐거움과 기운을 안겨주었다. 맑은 눈으로 자신만을 쳐다보고 그네들과 웃으면서 함께하는 시간은 잠깐 동안 맛보는 마음의 휴식이었다.
그러나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끝나고 나면 어김없이 이준이 지연의 머릿속을 통째로 지배해 버렸다. 지난 시간 함께 나누었던 웃음과, 따스한 울타리가 내내 지연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럴 때면 지연은 자그마니 한마디 속삭여 보았다. 무정한 사람 같으니…….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늘 지연 주변을 서성이는 강인기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준과 연결된 하나의 끈인 양 늘 주변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강인기가 지연에게 자그마한 위안을 주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번갈아 형철과 찬혁이 나타났다.
찬혁은 금요일마다 지연과 점심을 같이 했다. 금기라도 되는 듯 이준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은 채 그저 지연의 일상적인 안부를 꼼꼼히 챙긴 후 돌아갔다.
형철은 그 성격만큼 불쑥불쑥 나타났다. 어느 날은 학원 앞에서 지연을 기다리고 있기도 했고, 어느 날은 집으로 불쑥 쳐들어와 지연의 무거운 마음을 희석시켜 주었다. 지연은 그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지연은 아무렇지도 않은 채 더 밝은 양 웃음을 짓고는 그들과 헤어지고 난 후에는 모든 기력을 다한 듯 지친 밤을 맞았다.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늘 습관처럼 곁에 있던 사람 없이 홀로 서기를 한다는 것은.
정은은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아예 짐을 싸들고 쳐들어와서 갑자기 휑해진 빌라를 채워주었다. 지연이 괜찮다고 하였지만 정은은 이모한테 허락을 얻어서 끝내 지석의 방을 차지하고는 가끔씩 안부 전화만 간단하게 하고 마는 지석을 향해서 계속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그런 재잘거림이 오히려 작은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갑자기 텅 비어버린 집안에 조금은 사람 사는 향기가 풍기기 시작해서 지연은 정은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정은은 속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지연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낯선 해외에서 신나게 놀러 다닐 지석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지석의 목을 잡아끌고 데려오고 싶었다. 그러나 어렵게 나간 것이니만큼 한 명이라도 즐겁게 보내야 하지 않겠냐며 지연은 어설프게 미소 지으며 담담히 정은을 말렸다. 속에서 열꽃이 피어오르는 정은이었다.
지석이가 얼마나 이준을 따랐는지, 이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연이었다. 어렵게 떠난 세상과 만나는 그 발걸음에 무게를 담아 주고 싶지가 않아서, 지연은 절대로 지석에게 말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커플팬티를 선물한 지석은 이준과 지연 두 사람이 정상적인 혼약을 맺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지석에게 이런 사실을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후끈한 바람이 창을 통해 불어오고 있었다.
“언니 수박 좀 먹어봐.”
집에 돌아온 지연을 맞이한 건 정은의 활기찬 목소리와 밝은 얼굴이었다. 늘 하루하루 기력이 다한 듯 위태롭게 지내는 지연을 위해 일부러 밝고 활기찬 표정을 하는 정은의 속내를 아는 지연이 서글프게 웃었다.
“날이 정말 덥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표정을 바꿔보지만, 지연의 눈 깊은 곳에 담긴 수심을 정은에게 들키고 만다. 서로 모른 체하려는 두 사람은 황급히 시선을 피하고, 괜히 바쁜 듯 몸을 움직인다.
“빨리 씻고 나올게.”
지연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정은은 낮은 한숨을 토해낸다. 지연이 씻고 말간 얼굴로 나오자 정은은 보기에도 시원한 수박을 예쁘게 잘라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얼음이 사각사각 씹힐 것 같은 수박이었다. 지연의 입 안은 가시철망 같았다.
뾰족한 가시철망이 들어 있어 입 안이 긁히고 찔리고 피가 나는 것처럼 모든 음식이 그렇게 껄끄러웠다. 하지만 지연은 정은을 향해 웃어 주고는 수박을 잡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입가에 수박의 물기가 가득 적셔 주지만 지연은 그 맛도 제대로 못 느끼고 목 안으로 급하게 넘겨 버렸다.
“맛있네.”
지연이 웃어 주자 정은도 안심한 듯이 마주 웃어 주며 달게 수박을 먹기 시작했다.
“많이 먹어. 점점 더 말라가고 있어.”
아니, 시들어가고 있었다. 지연이 하루를 버텨낼수록 그 시간만큼 시들어가고 있었다. 수박 한 쪽을 다 먹고 지연이 내려놓자 정은은 또다시 지연의 손에 수박 한 을 건네주었다.
“먹는 게 남는 거야. 나중에 지석이 녀석 오면 한 대 패줘야 할 거 아냐? 녀석, 혼자서 잘도 돌아다니고 있어. 겨우 전화해서 누나 건강하지? 난 지금 독일이야. 여기는 암스테르담이야. 뭐, 순 이런 말만 지껄이고……. 난 그 녀석이 히말라야 꼭대기에 있다고 전화해도 더 이상 놀라지도 않을 거야. 아주 신났어. 신났어.”
정은은 앞에 지석이가 있기라도 하는 듯 몹시 얄밉다는 투로 열변을 토했다. 그 모습에 지연은 정은과 눈을 마주치며 다시 싱긋이 웃는다. 그렇지만 지연의 마음속의 퀭한 빈공간은 여전히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지연은 그런 빈 공간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형부 걱정은 하지 마. 언니나 잘 추슬러.”
마음속에 있던 형부란 단어가 튀어 나오자 정은은 당황해서 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그 단어 하나에 어깨를 잔뜩 긴장하는 지연이었다.
“아마 알몸으로 사막에 갖다 버려도 땅 파서 물장사 할 사람이니깐. 언니는 언니 걱정만 해. 뭔 수업을 그렇게 많이 잡았어? 그러다 쓰러지면 어쩌려고? 암튼 언니를 누가 말려. 이렇게 더운 여름에도 안 마르는데…….”
“그래. 그 사람은 아마 그럴 거야. 사막에 갖다 버려놔도 수맥 찾아서 물장사라도 할 거야.”
정은이 애써 농담으로 얼버무렸지만, 그래서 억지로 지연에게 잠시 웃음을 짓게 만들었지만 당황스럽다. 가끔가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마주하는 이준에 대한 말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대응하는 지연이 오히려 정은은 더 안쓰러웠다.
“언닌 바보야.”
“그래. 눈멀고 귀먹은 바보지.”
지연이 수박을 한 입 베어 물고 싱겁게 피식 웃어 버리자 정은도 마주 웃었다. 힘든 줄 뻔히 아는데도 용감한 체하는 지연이 계속해서 정은의 마음 한구석을 내리눌렀다.
한낮만큼 후끈한 열기가 밤이 되어도 그 기세를 멈추질 않는다. 며칠째 계속되는 열대야가 모두의 진을 빼고 있는 그런 여름밤. 까실한 얇은 이불을 덮었지만, 그래도 금방 온몸에 땀이 배어난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로 느긋한 몸짓의 제왕다운 걸음으로 사자 한 마리가 걸어온다. 사자의 갈기는 위엄을 나타내는 듯 멋스럽게 흘러내려 있었고 그 걸음걸음은 나태하면서도 아주 위협적이어서 마치 이준을 보는 듯했다.
저 사자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이곳은 정글도 아니고 도시였다. 번화한 거리의 상가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잔뜩 치장한 도시. 그 안에 사자 한 마리가 너무나도 유유자적하게 자신의 위용을 뽐내며 걷고 있었다. 갑자기 공포가 치달았다. 온몸의 솜털이 쭈뼛 설 만큼 잔인한 공포가.
지연은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았다. 거리엔 뜨거운 햇살로 늘어질 대로 늘어져 행인마저 보이지 않는다. 저 사자가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어서 안전한 곳으로 도망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공포가 온몸을 휘어 감으며 지연의 다리를 끌어당겼기에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지연을 발견한 사자의 행보가 조금씩 빨라진다. 숨이 턱에 차오를 만큼 심장이 요동을 치지만 지연은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움직여야 해. 움직여야 해. 필사적으로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그렇지만 지연은 겨우 몸만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 나타났는지 지연의 등 뒤에서 긴 몸을 바닥에 눕히고, 사냥감의 움직임을 유유히 지켜보는 커다란 암사자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암사자는 움직일 마음이 없는 듯 나른하게 긴 하품을 한다.
어쩌지? 사자의 크기는 너무나 크다.
지연 정도는 한입에 집어 삼킬 정도로.
살려줘!
비명이 목 안에 걸려서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를 않는다. 다시 고개를 돌리자 이젠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는 숫사자가 조금씩 거리를 좁혀온다. 온몸은 쇠사슬에라도 묶인 듯이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온몸을 쥐어짜듯 소리를 질러 보지만, 아무 소리도 공명되지 않는다.
지연 혼자만 사자 두 마리 사이에 서 있을 뿐……. 사자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지연은 두려움으로 눈을 꼭 감고, 어깨를 움츠렸다. 이제 끝이구나.
“비켜!”
순간 거센 힘으로 지연을 밀쳐내고 그 자리에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리던 이준이 대신한다. 그리고 커다랗게 포효하며 긴 몸을 날려 이준에게 달려드는 거대한 사자.
“헉!”
지연은 온몸이 벼랑 아래로 뚝 떨어지듯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가슴을 꽉 짓누르는 꿈의 잔재가 지연을 꼼짝 못하게 내리누르고 있다. 심장이 무섭게 쿵쾅거리며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너무나 선명하게 꿈이 각인되어 마치 꿈보다 직접 겪은 일처럼 느껴지기조차 했다. 이준을 삼키려는 듯 달려든 거대한 숫사자.
밧줄에 꽁꽁 묶인 양 팔 하나 들어올리기조차 무겁다. 그러나 지연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천천히 일어나서 시계를 쳐다보았다. 세 시 오십 분! 갑자기 머리끝이 쭈뼛 서는 듯한 공포감이 온몸을 관통한다. 지나치게 선명한 꿈! 그리고 새벽이 오는 시간. 이건 태몽이야! 지연은 꿈 한 자락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아내가 임신을 한 것이다. 자신에게는 절대로 주지 않던 아이를 그의 아내는 가진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와 슬픔이 치밀고 올라와 금세 지연을 집어삼켜 버린다.
그의 아내가…… 임신을 했다…….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이 느껴진다. 화장실로 달려간 지연은 먹은 것을 모두 토해냈다. 변기통을 붙잡고 늘어진 채 누런 위액까지 토해내었다. 온몸이 땀에 젖었고, 속을 까뒤집을 듯한 구토가 끝나자 탈진한 지연을 덮친 것은 오슬오슬한 한기였다.
바닥에 쓰러질 듯이 누운 지연은 가슴 한복판이 무거운 돌덩이 하나를 올려놓은 듯 숨쉬기조차 힘들어지고 답답해졌다. 숨을 헐떡이며 지연이 눈을 감자 눈가에는 다시 마른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기력을 잃은 지연은 오랫동안 바닥에 누워 일어나지 않았다.
사랑이 사랑을 난자(亂刺)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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