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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잔의 향낭 1/2 독자추천
  • 한수영 지음 | 피우리 펴냄 | 로맨스(현대물)
  • 15세 이상 관람가 | 용량 : 267 KB | 2006년 03월 03일 출간
  • 8.9점 / 16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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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평가
책 소개
한수영 님의 장편로맨스
2004년 종이책으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월하노인이 이어놓은 운명의 붉은실 양 끝의 두 사람, 혜잔과 라칸.
아름다운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 사이로, 인형들 또한 이야기로 살아납니다.
연작 소개

연작은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관련이 있는 작품들로서 함께 읽으면 스토리 전체를 더욱 즐기실 수 있습니다.

작가 소개

한수영

사는 곳 : 온고을 청룡소(靑龍沼) 옆 & 꿈집(http://dreamhouse.byus.net/)

추구하는 것 : 진화하는 이야기꾼

출간작 : 은장도, 연록흔, 단팥빵, 혜잔의 향낭

e-book은 설빙화, 셋째딸 콤플렉스, 21C 바리공주


<작품소개>
2004년 종이책으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인형장, 혜잔.
전세계의 사랑을 받는 은빛 늑대, 라칸.
월하노인이 이어놓은 붉은 실을 따라 저절로 서로를 찾은 운명적인 사랑.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열은 고온에서 저온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사랑은 서로에게로 움직인다.
혜잔과 라칸이 그러하듯.


-본문 중에서

당그랑 딩!
라칸은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따뜻한 공기가 밀려 나왔다. 난로 옆에 조그만 여자가 앉아 있었다. 동그랗게 말린 모습에 일순 숨이 탁 막혔다.
동, 동, 동…….
풍경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라칸은 가만히 서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서 바느질하는 여자가 눈에 와 박혔다. 왠지 모르지만 쉽게 빠져나가지 않을 조각처럼 느껴져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응?”
찬바람이 뺨에 닿았다. 혜잔은 한쪽 이어폰을 빼고 고개를 들었다. 누가 왔나? 이 시간에? 그녀는 코를 훌쩍이며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울어서 눈이 발갰다.
“푹!”
바늘이 손가락에 박혔다. 붉은 피가 뚝뚝 돋았다. 혜잔은 너무 놀라서 아프단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종이 속에 있던 남자가 지금 공방 안에 있었다.
“어서 오세…….”
태엽 감은 장난감처럼 거의 자동으로 나온 말, 혜잔이 공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으레 하는 인사였다. 그에 환상이 다가왔다. 턱턱. 발걸음 소리도 들리고……. 찬바람 먹은 희미한 체취도 맡아졌다.
“아야!”
혜잔은 때늦은 비명을 질렀다. 비로소 아픔이 느껴졌다. 라칸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왼손 엄지 가운데 마디에 박혀 있는 바늘을 빼냈다. 구멍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괜찮습니까?”
혜잔은 멍하니 고개만 끄덕였다. 피가 죽죽 흘렀다. 그녀가 바늘을 잡은 세월은 십 수 년이지만 이렇게 많은 피를 쏟은 적은 없었다. 칼에 베인 것만큼이나 많은 피가 상처에서 쏟아졌다. 피 몇 방울 돋고 말던 바늘구멍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혈관을 찔린 모양인데…….”
손가락에서 흐른 피가 손바닥을 타고 흘러 손목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하면.”
라칸이 혜잔의 손을 높이 쳐들었다. 심장보다 높아진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그녀는 커다란 손의 온기에 넋을 잃었다.
“구급함은 어디에?”
충격으로 언 상태라 혜잔은 아무 말도 못했다. 갑자기 라칸도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잠시 침묵을 이해 불능으로 받아들였다.
“저 선반 위에 있어요.”
혜잔이 영어로 말하자 라칸이 재빨리 움직였다. 그는 솜에 알코올을 묻혀 피를 닦아 내고 밴드를 단단하게 감았다. 그에 상처가 지끈거렸다. 팔딱팔딱 뛰는 것도 같았다.
“항생제 주사라도 맞는 게 좋겠군요.”
“아니요, 저…….”
아직도 꿈인 것만 같았다. 혜잔은 느린 동작으로 이마를 가리켰다. CD 플레이어로만 듣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들으니 모든 반응이 느려졌다. 혀가 마음보다 둔하게 움직였다.
“다쳤군요.”
“이 상처 때문에 항생제는 매일 먹고 있어요. 괜찮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나 때문에 놀란 겁니까?”
이럴 수가 있을까? 왼쪽 귀에서는 CD에 담긴 노래하는 음성, 오른쪽 귀에서는 라칸이 직접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라운드 돌비시스템이었다.
“아니……, 예.”
혜잔은 고개를 젓다 금세 끄덕였다. 이 사람이 여기 왜 와 있을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많이 아파요?”
라칸은 쌍꺼풀 없는 눈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여자는 눈이 너무 예뻤다. 너무 맑아서 푸르게 보이는 흰자위, 초록과 연두의 반점을 품은 개암빛 눈동자……. 햇살 속에서 보면 더 아름다울 것 같았다. 세상에서 단 두 개 있는 보석이 투명한 유리알 너머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동양인치고는 특이한 눈빛이었다. 여태까지 쌍꺼풀이 없는 동양인의 눈은 그저 옆으로 길게 찢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고정관념을 바꿔야 할 모양, 잘 드는 칼로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것처럼 여자의 눈매는 은근하고 고왔다.
“여기는?”
라칸은 고운 눈에서 시선을 좀 더 높은 곳으로 올려 실밥이 박힌 이마를 보았다.
“괜찮아요.”
“그럼 여기는?”
혜잔의 왼쪽 엄지는 아직 라칸의 손 안에 있었다. 찔린 곳이 몹시 화끈거렸다. 그리고 아무 상관없는 뺨도 뜨거워졌다.
“거기도 괜찮……. 저, 그런데 무슨 일로 제 공방을 찾아오셨지요?”
혜잔은 목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 상황에서는 보통 손님들한테 하는 말이 가장 무난할 것 같았다. 다른 말을 했다가는 심장이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녀는 숨을 한 번 참았다가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물었다.
“홍혜잔 씨?”
“예, 그런데요.”
라칸의 미소로 비뚤어진 입술이 혜잔의 눈 바로 위에 있었다. 웃음을 머금고 늘어진 입술 선은 정말 근사했다. 감히 그래도 된다면 한번 만져 보고 싶을 정도였다.
“제대로 찾았군요.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예, 무슨?”
“지금 호텔에 두고 왔는데 부상 입은 녀석이 하나 있어요. 만든 사람이어야 한 솜씨로 잘 고친대서 데리고 왔습니다.”
라칸에게 내가 만든 인형이 있었다고? 설마? 혜잔은 놀라 입을 딱 벌렸다.
“조카 녀석이 아주 좋아하는 인형인데 버릇없는 고양이 손을 좀 탔지요. 어때요, 고쳐 주시겠습니까?”
“무, 물론이죠.”
먼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조카 인형 하나 고쳐 주자고 이 먼 곳까지 온 것을 보니 라칸도 지구 위에 발 딛고 사는 사람이 분명했다. 혜잔은 볼에 우물을 만들며 웃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행운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예쁜 미소는 더욱 깊어졌다.
“내일 아침…….”
라칸은 인형을 가지고 다시 오겠노라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웃음빛 녹은 개암열매 두 개를 보자 다른 마음이 강해졌다.
“어?”
혜잔에겐 각이라는 것이 없었다. 곡선과 곡선이 있을 뿐. 웃느라 부드럽게 퍼진 입술도 곡선, 웃음의 무게만큼 처진 눈가도 곡선, 결 곱고 보드라운 눈썹도 곡선, 하얀 뺨에 몇 가닥 흘러내린 검푸른 머리카락도 곡선이었다.
“닮았군요.”
조그만 얼굴이 큰 손에 쏙 들어갔다. 라칸이 보드랍고 동그란 턱을 어루만지니 맑은 눈이 빛을 잃고 뒤로 숨어 버렸다.
“당신이 만드는 인형하고 많이 닮았어.”
단아한 턱 선이 조금 흔들렸다. 마른 침을 삼키느라 기다란 목이 움직였다.
“…….”
입술이 닿을 듯 가까워졌다. 혜잔은 라칸의 숨결을 코끝으로 느꼈다. 속눈썹이 발발 떨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아찔한 느낌에 그녀는 눈을 조금 떴다.
“어…….”
은회색 눈동자, 얼음빛 같기도 하고 바짝 마른 잿빛 같기도 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냥 단순한 회색이 아니었다. 미색에 가까운 푸른 빛, 풀빛, 감빛이 고루 섞여서 빛돌보다 아름다웠다.
“저기…….”
“응?”
“너무…….”
“너무?”
“가, 가까워요.”
만나면 한번 껴안아 볼 거라고 했던가? 정녕 그런 생각을 했던가? 혜잔은 바짝 졸아붙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래요. 너무 가깝군.”
라칸은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놔 주지는 않았다. 볼수록 예쁜 얼굴이었다. 조그맣고 통통한 입술, 얄팍한 눈꺼풀, 말갛고 보드레한 피부……. 그는 말랑말랑한 뺨을 한 손 가득히 담았다.
“인형이 비…….”
말더듬이가 되어 버렸나? 혜잔은 침을 꼴딱 삼키고 얼굴을 억지로 뺐다. 라칸도 이번에는 그냥 놓아 주었다.
“비스크인형인가요, 천인형인가요?”
바로 마주치는 시선이 강렬했다. 혜잔은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책장에 꽂힌 포트폴리오를 찾았다. 은빛 눈동자가 목덜미에 와 꽂혔다. 돌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모르는 척하고 파일만 뒤졌다.
“얼굴하고 팔은 비스크고 몸은 천인형이던데요.”
팔락팔락, 투명한 비닐 주머니 안에 넣어 둔 사진들이 날아왔다. 혜잔은 발개진 얼굴을 파일에 처박듯이 숙였다. 스윽, 뭔가가 목덜미에 닿았다. 강하지만 부드러운 것! 라칸의 머리카락이었다.
“잠깐.”
“예?”
라칸이 바짝 뒤에 붙어 서서 파일을 들여다보았다. 심장이 통통 튀었다. 이 소리가 들리면 어떡하나? 혜잔은 파일을 쥔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한 장만 앞으로 넘겨봐요.”
혜잔은 시키는 대로 했다. 비닐이 바스락거리며 넘어갔다.
“이거! 우리 에밀리는 차니라고 부릅니다.”
라칸이 손가락으로 짚은 것은 하늘나라 선녀를 모티브로 만든 인형이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얼굴과 팔다리는 비스크고 몸통은 솜을 채웠다.
“해빈이에요. 선녀인형이죠.”
“해빈?”
그윽한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렸다. 혜잔이 정신을 차려 보니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안기게 될 포즈였다. 그녀는 슬쩍 몸을 돌려 라칸을 마주 보고 섰다.
“제 기억으론 은백색 금발을 가진 여자 분이 사 가셨어요. 웃는 얼굴이 참 화사한 분이었는데…….”
“눈은 청회색?”
“그랬던 것 같아요. 영국에서 왔다던가…….”
형수 니콜이 맞았다. 아마도 언젠가 이곳으로 여행을 왔던 모양이었다. 라칸의 얼굴이 굳어졌다.
“해빈이라면 상태를 봐야겠지만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요. 팔다리를 다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몰드가 있긴 하지만.”
생체 온도계가 자꾸 올라가는 모양, 늘어나서 위로 올라가는 빨간 알코올 기둥처럼 하얀 얼굴도 점점 붉어졌다.
“고양이가 옷도 갈가리 찢었는데.”
목덜미까지 분홍물이 든 걸 보니 더 놀리고 싶어졌다. 라칸은 가깝게 붙어 서며 느릿하게 말했다.
“그럼 시간을 넉넉하게 주셔야 할 텐데요.”
안전한 화제로 재빨리 피하기. 혜잔의 처세술은 그럭저럭 먹혀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치 안 채이게 뒤로 슬슬 피하다가 결국은 벽 바로 앞에서 멈췄다. 청량한 숨결이 머리카락을 날렸다. 라칸이 웃고 있었다.
“넉넉하게라……. 조카 녀석이 밤마다 울며 보채요. 죽은 엄마가 준 인형이라 애착이 심합니다. 라이너스의 안심담요처럼.”
“그때 그 여자 분, 돌아가셨나요?”
라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혜잔의 표정이 잠시 침울해졌다.
“어, 그러면……, 최대한 빨리 하도록 노력해 볼게요.”
어둡게 떨어지는 눈동자가 고왔다. 걱정해 주는 마음도 예뻤다. 라칸은 대답 대신 뽀얀 손을 잡아 버렸다.
“시간도 늦었는데 무섭지 않아요?”
살살 어루만지니 잔뜩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라칸은 손을 더 단단하게 잡았다. 짧지도 길지도 않고 마르지도 않은 손가락이 통통하니 예뻤다. 말랑한 것이 잡으면 감촉도 좋았다.
“예.”
라칸은 혜잔이 작업대에 벌여 놓은 것을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아까 흘린 피가 일감 사이사이에 떨어져 새카맣게 말라 있었다.
“갑옷입니까?”
“예. 두석린 갑옷이에요.”
두석린이 뭔지 알 리도 없지만 혜잔은 정확한 명칭으로 말했다.
“철엽을 엮다가 다쳤군요.”
갑옷미늘은 물고기 비늘처럼 빈틈없이 달려 있었다. 황동 또는 놋쇠라고도 불리는 두석은 예로부터 갑주나 가구 장식에 많이 쓰이는 금속재료였다. 혜잔은 쇠가닥을 두드려서 펴고 다듬고 실톱으로 오려내 작은 철엽을 만들었다. 힘들지만 예전 방식 그대로 재현했다. 그리고 금속공예과 출신답게 깃으로 달 두석판에는 용까지 음각해서 넣었다.
“독특하군요. 무척 정교하고.”
두석린 하나하나에 조그만 구멍이 뚫려 있었다. 라칸은 혜잔이 미늘을 달다 만 갑옷에 관심을 보였다. 맑은 잿빛 눈은 무척 진지했다.
“작업은 혼자서 다 합니까?”
찰랑찰랑, 갑옷에서 맑은 쇳소리가 났다. 붉은 비단 바탕에 양어깨에서 복부까지 달린 적, 황, 흑 삼색의 놋쇠미늘이 반들거렸다. 라칸은 앞깃 아래에서부터 도련옆선 배래 수구까지 달린 황색 모피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거의 그렇게 하지만, 도움을 받기도 해요.”
금박장 할아버지, 천연염색가 고모, 기꺼이 자문에 답해 주시는 대학교 은사님들, 미니어처 제작에 가끔 도움을 주는 후배 녀석들……. 혜잔에게는 든든한 손들이 많이 있었다.
“전에는 인형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군요.”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남준이 때문에 심란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났다. 혜잔은 멍한 눈으로 라칸을 올려다봤다.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을 때 말이지만…….”
피가 돈다. 도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빨리 돈다. 나더러 예쁘다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신이 날까? 내 맘대로 안 되는 얼굴을 어찌 하면 좋을까나? 수도 없는 속말이 빙빙 돌았다. 혜잔은 숨 쉬는 것조차 잊고 가만 서 있었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까, 내일 봅시다.”
“예? 아, 그렇게 하세요.”
입은 그렇게 말하지만 마음은 서운했다. 혜잔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느라 떨리는 입술로 웃었다. 그러다 같은 자리에서 서서 고개만 꾸벅 숙였다.
“그럼…….”
라칸이 돌아섰다. 점점 문에 가까워졌다. 당그당! 풍경이 제 몸을 쳤다. 찬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딩당, 딩당, 동, 동, 동!”
혜잔은 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계속 지켜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바쁜 척하며 다시 작업대에 앉았다. 난로 옆인데도 한기가 들었다. 그녀는 두석린 미늘을 들어 실에 꿰었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이게 현실일까? 아까 너무 포스터를 오래 들여다봐서 꿈을 꾼 건 아닐까?’
아직 발매 전이라서 혜잔은 새로 나온 앨범은 사지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었다. 그런데 진짜 라칸이 공방에 나타나다니! 정말 꿈이지 싶었다. 그녀는 얼떨떨했다.
“그런데.”
“……?”
꿈은 확실히 아니었나 보다. 혜잔이 몸을 홱 돌리니 라칸이 아직도 문 앞에 있었다. 큰 키에 어깨 넓은 그가 문을 가리고 선 것을 보니 눈이 뜨거워졌다. 그래, 절대 꿈은 아니다. 그녀는 너무 기뻐서 큰 소리로 속말을 했다.
“리베라호텔은 어떻게 갑니까? 길을 잃은 것 같은데…….”
밖에서 들이치는 바람에 라칸의 머리카락이 날렸다. 은빛 눈동자가 눈빛을 받아서 더욱 밝았다.
“그건.”
혜잔이 벌떡 일어섰다. 도독톡, 두석린 미늘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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