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나 애타게 찾았건만 결국 운명의 상대와 결혼한 수연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광적인 집착 때문에.

점점 피폐해져가던 삶 속에 닥쳐온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
그로 인해 수연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의지마저도 상실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시 찾아온 열병,
죽은 전남편 레빈의 성명이 사라진 왼쪽 가슴에 홀연히 떠오른 두 번째 이름.

또다시 그녀는 운명의 상대를 찾아야 했다.

다시금 만난 \'그\'와 가슴에서 지워진 \'그\'가 남긴 상흔 사이에서 수연은 방황하는데…….

* * *

질병 사전 – 신체성명발현증후군 (The Name syndrome)

1. 원인
- 불명.

2. 발병 및 역학
- 전 세계 약 5%의 사람들에게 예상 징후 없이 갑자기 발병함.
성인식 전후로 고열과 오한, 몸살 증세를 동반한 감기와 유사한 열병을 앓고 나면 신체에 신원을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이 새겨짐.
대부분 심장 위 왼쪽 가슴에 나타난다고 확인됨.

3. 주요 증상
- 피부에 발현된 성명을 가진 사람들을 무의식중에 그리워하고 그 상대, 일명 운명의 상대를 찾지 못하면 기이한 허탈감과 고독감에 빠져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음.
피부상 발현된 성명은 직관적, 자의적인 해석만이 가능함. 예를 들어, 운명의 상대의 국적이 한국, 이름이 ‘영희’일 경우 영희라는 글자가 아랍어나 이집트어 같은 비주류 언어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음. 때로는 성명의 일부만이 발현된다든가 아명으로 발현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를 찾는데 난항이 예상됨.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면 서로만이 확인할 수 있는 향기로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고 확인됨. 그로 인해 기이한 성감의 증진을 느끼게 되고 폭발적인 성욕으로 서로의 존재를 재확인할 수 있음. 향기 확인 가능 거리가 얼마인지는 측정 불가능.
운명의 상대가 아닌 사람과 일반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함. 적게는 구역질을 동반한 거부감이 들고 심하게는 비출혈과 하혈까지 했다는 보고가 있었음. 남성의 경우 발기가 완전히 불가능함. (자위를 하기 위해 다양한 영상 매체를 이용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확인됨.)
운명의 상대와 성교를 하게 되면 각인하게 되어 신체상 발현된 성명이 변화됨. 이 역시도 상대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 언어나 국가가 반영되는 경우가 많고 자의적이고 직관적인 해석이 가능한 성명인 경우가 많음. 예를 들어 한국계 미국인 존의 운명의 상대에게 존의 한국 이름인 영수가 한글로 표기될 수 있음.
#향기로 서로를 확인하고 동침해 새로운 성명이 발현되는 일련의 행위를 매칭 혹은 각인이라고 통칭함.

4. 치료
- 아직까지 효과적인 치료법은 없음.

5. 주의 사항
- The Name(www. tHenaMe.co*)에 접속해 신체상 발현된 성명에 대한 정보를 올리고 매칭의 확률을 높일 수 있음. 하지만 발현된 성명 자체가 모호해 확률이 높지 않음.
아주 극소한 확률로 발현자가 운명의 상대가 아닌 일반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어도 생식 능력이 없음. 3. 주요 증상에 설명되어 있는 부작용 역시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
매칭 혹은 각인이 이루어지면 상대만 바라보고 갈망하게 되는 로맨틱한 질병이라는 평도 있으나 매칭하지 못하게 되면 평생을 허기와 갈망으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음.
발현자 중 매칭에 성공한 사례는 약 30% 정도로 그다지 확률이 높지 못함.

6. 특이 사항
각인한 사이라고 해서 반드시 서로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는 볼 수 없음. 부정 망상 또는 오셀로 증후군과 같은 망상성 장애로 인해 고통받는 사례가 다수 확인됨. 건강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함.
또한 반드시 비슷한 시기에 사망하는 것은 아니므로 상대의 사망으로 인해 심리적인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음. 자기파괴적인 충동으로 자살을 감행한다든가 약물에 중독되는 등 반사회적인 행위를 시도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적절한 약물 치료와 주변의 관심이 필요함.

작가소개
- 발그레

The Name III 집필중